[역경의 열매] 심영기 (7) 사기 사건, 백수 1년… 이 모두 선한 계획이시라

입력 2012-05-21 18:21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나는 국립의료원을 나와 개원 준비를 하면서 이 성경 구절을 너무나 생생하게 실감했다.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만으로 이것저것 살피지 않고 마구 밀어붙이다 큰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개원만 하면 누구보다 잘 할 것 같은 자신감으로 넘쳤던 나는 일단 환자들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 명동을 꼽았다. 그리곤 브로커를 끼워 소위 목 좋은 자리 확보에 나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괜찮은 건물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다음 우여곡절 끝에 임대계약을 맺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이 브로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시간만 계속 흘렀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애를 태우다 결국 많은 돈을 떼인 채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내가 사람들한테 당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게 바로 그때였다. 뜻밖의 사기 사건을 당하고서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그때 나로선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라고 해석했다. 내가 개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욕심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신 것이다. 앞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한 차례 담금질을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 의원을 할 때는 물론이고 연세에스병원을 운영하는 지금도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업장을 지향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변화된 뒤 여기저기서 나에 대한 말들이 들렸다. 대개 내가 크리스천이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심영기만큼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하기야 누구보다 술을 즐기고 놀기를 좋아하는 나였으니 충분히 나올 법한 구설수였다.

하지만 다른 건 대충 듣고 넘기겠는데, 어머니의 말씀에는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안 그래도 어머니는 의사 아들이 번듯한 직장을 팽개치고 1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그 아들이 빨리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 믿는 데에 열심이라고 하니 많이 언짢아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너 교회에 미치면 절대로 돈 못 번다”면서 교회 출입을 끊으라고 번번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나는 마음속에 기준을 세워놓았다. 웬만한 유혹이나 위협에도 버틸 든든한 기준이었다. 물론 나도 누구 못지않게 돈과 명예를 원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런 것 때문에 신앙을 희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걸 위해서 신앙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하나님께서 부와 명예를 축복으로 주시면 감사함으로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일을 하지 않고 10개월 넘게 지내니 주위의 눈치도 보일뿐더러 슬슬 몸도 근질거렸다. 게다가 졸지에 거금을 까먹고는 아무 벌이도 없이 지내는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나의 그런 심사를 아는 아내는 가끔 “당신은 세상에서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인 하나님을 만났잖아요”라며 위로했다. 그럴 때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솟았다. 아내가 너무 고맙고 귀하게 보였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다 마침내 때가 된 듯했다. 해를 넘겨 93년 봄바람이 살랑이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마치 “영기야,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하시면서 내 등을 떠미시는 듯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