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영기 (6) 1992.8.30 변화의 날… 뜨거운 기운 시원한 바람이
입력 2012-05-20 18:18
1992년 8월 30일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는 그날 마음 깊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났다. 친구의 인도로 찾아간 서울 불광동 성서침례교회에서 김우생 목사님의 영접기도를 받으면서 이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색다른 세계를 체험했다.
그날 주일예배를 마친 뒤 교회의 구석방으로 안내될 때만 해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 기분을 아셨는지 목사님은 환한 얼굴로 대해주셨다. 그리고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셨다. “진실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요한복음 3장 3절에 대해 주로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리고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지면서 절절한 기도 소리는 사방 벽면을 울리다가 이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특히 기도 중에 들어 있는 성경 구절이 내 심령에 콕콕 박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가슴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내 온 몸이 달아올랐다. 날씨가 더워서 그러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뜨거운 기운은 내 몸 아래쪽에서 머리로 치고 올라왔다. 마치 사슬에 꽁꽁 묶였던 내 몸이 풀리는 것처럼 해방감이 느껴졌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에서부터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너무 좋았다. 너무 행복했다. 기쁨과 행복에 겨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축하한다면서 껴안아줬다. 나 혼자만 느끼고 간직하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기도해준 아내가 또렷하게 보였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그 기쁨과 행복감은 여전했다. 집안 가득 기쁨과 행복으로 차 있는 것 같았다. 밤늦게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나가는 여관 기능밖에 못했던 집이 처음으로 포근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로 느껴졌다. 계속 싱글벙글하자 아내는 “당신 혹시 쇼하는 건 아니지?”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그토록 싫었던 교회 가는 게 좋아졌다. 괜히 주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 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책장의 신앙서적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웠다. 가방에는 항상 성경책을 넣어 다니는 습관도 생겼다. 그뿐이 아니었다. 성경책을 여러 권 사서 집에 쟁여놓기까지 했다.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들을 초대해 성경책을 선물하면서 내 체험담을 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나의 변화는 급진적이었다. 어떨 땐 내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신앙적으로 쑥쑥 성장하는 것 같았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혹은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점이 있으면 곧바로 메모를 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게 있었다. 내 상황을 고려한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국립의료원을 그만두고 나와 개원 준비를 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오랜 시간 여유를 갖고 있었다. 만약 내가 국립의료원에 근무하거나 개원을 했더라면 그렇게 급격하게 신앙적으로 깊어질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또 있다. 당시의 내 심적 상태가 굉장히 허허로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좀 있다가 설명하겠지만, 개원 준비에 차질이 생겨 적지 않은 돈을 날린 상태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키고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세상과 떼어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축복을 주시기 전에 작지 않은 좌절과 아픔을 겪게 하신 것이다. 참으로 절묘하신 하나님이 아닌가. 인간이 어찌 그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물며 나처럼 악했던 인간이….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