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新 귀거래사
입력 2012-05-20 18:05
온 세상이 푸르름으로 가득한 5월, 자연 속 삶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해진다. 내가 자연에 눈을 뜬 것은 밖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된 뒤부터다. ‘美製 학위’도 따고 영어도 하면 ‘뭐가 좀 되겠다’던 자만감은 그러나 되돌아올 때쯤엔 한갓 부질없는 허욕으로 버려졌다. ‘Garden State’라 불릴 정도로 자연이 좋은 뉴저지주에서 산 6년, 유학생의 생활은 어렵고 가난했지만 나는 행복했고 부쩍 순해졌다. 숲과 그 안의 생명들은 강퍅한 나의 상처를 보듬고 잔잔하게 만들었다.
귀국 후 신문사에 재입사한 후 내가 신나서 기획한 것이 ‘자연에 산다’라는 시리즈 기사. 도시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연의 품에 안긴 공무원, 교수, 회사원 등 30여명의 사례를 찾아 반년여 전국 산야를 누비면서 나는 그들의 삶에 매료됐다. 맑고 평화로운 그들의 모습과 삶터가 기사화되자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귀촌하려는 도시인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때라 그 기사는 책으로도 엮어져 많은 이들의 꿈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대안으로 택한 것은 강남 도심의 집을 북한산 중턱으로 옮기는 거였다. 그곳에서 텃밭과 과일나무를 가꾸며 산 8년여 세월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산동네로 옮기면서 중학생 아들과 오래 떨어져 살아야 했던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지금은 아들 직장 근처 도심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주말이면 세낸 텃밭에 농사를 짓고 야간엔 도시농부학교를 다니며 자연에의 갈증을 해소했다. 그게 내 숨통이었다. 아들이 결혼해 분가하는 시점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마음이 설렌다. 가슴 설레던 것이 과연 언제였던가.
20년 전 책의 주인공들과 최근 연락을 시도했다. 그들이 여전히 행복한지 궁금했다. 경북 상주군 청화산 기슭에 둥지를 틀었던 학사 농부 7명, 신문 1면 머리기사로도 소개됐던 그들은 지금 한국 최초로 시작한 블루베리 재배 사업으로 상승일로다. 공고 교사 출신 임정도씨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했으니 더 이상 욕심도 후회도 없다”고 했다.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자리를 박차고 전북 고창으로 갔던 진영호씨의 화훼농장은 지금 고창군의 자랑거리인 청보리 축제마을로 변신,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는 “어떤 일에서든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 농사를 지어도 성공한다”며 “귀농했던 사람들의 70%가 되돌아간다지만 남들이 말렸던 이 선택을 사랑한다”고 전했다.
요즘 ‘인생 이모작’을 위한 귀촌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생명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자연, 공동체 삶의 즐거움, 나답게 살아가는 자유 등에 가치를 부여하고 가난과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타인이 말하는 실패와 성공이 무슨 소용인가.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나의 동지들, 건투를 빈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