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순영] 전쟁과 평화

입력 2012-05-20 17:59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원작 소설이나 헨리 폰다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업의 치열한 경쟁 현장, 이른바 글로벌시장에서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투와 그 덕에 이 순간에도 평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달 현대자동차 초청으로 베이징 모터쇼를 다녀왔다. 세계 16개국 300여개 자동차 브랜드들이 참가한 모터쇼에는 1125대의 자동차와 120종의 신차가 전시되었다. 1만여명의 기자도 몰려들었다. 소문대로 세계적 규모의 모터쇼였다.

필자는 모터쇼를 보며 전율했다. 모터쇼 자체보다는 예상을 뛰어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속도 때문이었다. 올해 중국시장에서 자동차 판매규모는 1500만대를 웃돌 것이라 한다. 곧 미국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중국을 넘어 세계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 진출한 세계적 완성차 회사들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 무한경쟁의 한복판에 현대·기아차가 있다. 국내외 숱한 비관적 전망을 딛고 지난해 세계 5위 완성차업체로 성장했다. 중국 내에서 판매량도 10%를 점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덕에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고, 경제주체들은 평화와 안정을 얻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기업의 생존을 위한 경쟁은 중국시장과 자동차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업종을 망라해 매일 생사를 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경제는 침체한다.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의 근원지인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그러하다.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한 정부 책임도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국민경제를 뒷받침해 줄 경쟁력 있는 기업들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패배는 곧 평화와 평안의 상실을 의미한다. 경제전쟁의 패배도 같다. 국내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펼치는 불굴의 도전과 노력도 놀랍지만 해외에서 전개하는 생존전략과 전투는 더욱 눈물겹고 감동적이다. 특히 해외에서 나타나는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은 더욱 그러하다. 생산에서 기술개발, 판매에 이르기까지 상생과 동반성장의 모범을 본다.

지난 8일 베이징 현대자동차 1공장 도장라인의 화재는 현대차가 중국 진출 후 맞은 최대 위기였다. 그러나 현대차와 협력기업의 임직원들은 세계를 경악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도장은 20㎞ 떨어진 3공장 라인을 활용하고, 사흘간 교대로 철야작업을 하며 화재 발생 109시간 만에 조립라인을 재가동시킨 것이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을 한국의 대·중소기업과 그 임직원들이 함께해낸 것이다.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 기업들의 진면목이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패배하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가난의 멍에를 다시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평화 평안 풍요로움을 잃게 됨은 물론이다. 우리 모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성장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대신 기업은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통한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지속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성원과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

전쟁과 평화는 한 배를 타고 있고, 동전의 앞뒤와도 같다. 평화는 길수록 좋고 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대·중소기업은 글로벌화와 동반성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홍순영(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