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병록] 신임 대법관의 자격
입력 2012-05-20 17:59
오는 7월 10일 퇴임하는 대법관 4명의 후임에 대한 인선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법적 분쟁의 최종 판단기관이므로 그 구성원인 대법관은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단순한 법적 분쟁의 해결이라는 차원을 넘어 그 시대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는 노사분쟁이 상존하고 있으며, 좌우 이념 대결이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필요성도 더 커지고 다문화가정의 증대로 인한 사회적 문제 역시 증대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대법관 인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관 인선에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법관의 조건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조건을 제안해보고 싶다.
서울법대·판사 위주 탈피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우선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법관의 자질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국민의 강한 신뢰가 회복되고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세력의 압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확고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법률적인 지식과 지혜가 충분하여야 하고 균형감과 합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복잡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법률적 지식이 충분하고 법적 판단을 함에 있어 지혜롭게 처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사회갈등을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시대의 가치판단 기준을 제시하려면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욕구를 지혜롭게 판단하면서도 소수자나 약자 등 소외계층의 이익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여성·노동·환경·복지 등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거나 전문적 시각이 필요한 분야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포함시켜야 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우선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거나 사법부 조직 내에서 그동안 신망을 얻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여야 한다. 사법부 본연의 임무에 구성원으로서 충실하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윗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거나 조직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은 사람, 돌출행동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는 사람을 배제하여야 한다.
균형감, 전문성, 신망 갖춰야
둘째, ‘남성, 서울대 법대, 현직 판사’라는 공통지수가 거의 80∼90%나 되는 현재의 대법관 구성을 탈피하여야 한다. 여성이나 비(非)서울대 출신을 그저 양념 가미하듯 한두 명 끼워넣는 것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학교, 다양한 지역 출신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분들을 많이 찾아보아야 한다. 대법관에 여성과 비서울대 출신이 선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상의 균형 맞추기에 급급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특히 현직 법관 이외에도 대학교수, 재야 변호사, 법학연구기관에도 신망받고 존경받으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한둘이 아니다. 대법관 구성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시대정신을 살리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대법관이 되는 것이 엘리트 코스를 거친 특정 학맥 법관들의 최종 승진코스처럼 여겨지는 잘못된 문화는 이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됨을 고려하여야 한다. 실제로 양승태 대법원장은 고법원장을 지내고도 다시 판사로 일할 수 있는 평생법관제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도 파격적인 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최근 사법부는 일부 판사들의 돌출 행동과 법원을 비판하는 영화 등으로 일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억울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살피고 따뜻하게 헤아려 주는 사법부로 거듭난다면 법치주의의 최후보루요 인권보장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애국으로 국가를 구하듯이 대법관 한 사람의 인품과 신뢰로 말미암아 사법부 전체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열성으로 후보를 찾아 선임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최병록(서원대학교 교수·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