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 교수 산문집 ‘애도예찬’… 문학 속 ‘슬픔의 방정식’

입력 2012-05-18 18:11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 이는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이다. 애도는 사랑과 상실이 낳은 자식이다. 시쳇말로 죽을 만큼 사랑했다면 그 사랑의 대상이 죽었을 경우의 애도는 끝없이 계속될 뿐이다.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다. 그렇기에 애도는 문학의 한 방식이고, 문학 또한 애도의 한 방식인 것이다.

왕은철(사진) 전북대 영문과 교수의 산문집 ‘애도예찬’(현대문학)에 들어 있는 애도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는 우선 19세기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애도의 불가능성’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은 몇 페이지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애도를 거부하고 애도에 실패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맞다.”(19쪽)

아버지의 죽음을 속 시원하게 애도하지 못해 정신질환을 앓은 경우는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이다. 그녀는 지극히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어머니 때문에 펑펑 울어도 시원찮은 아버지 상실의 슬픔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애도의 사례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경우는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히로시마 내 사랑’에 등장하는, 적군을 사랑한 이름 없는 20대 여성일 것이다. 프랑스를 점령한 한 독일군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을 찾아온다. 그녀는 배운 대로 상대를 쳐다보지 않고 치료를 한 후 붕대를 감아준다. 독일군은 손이 다 나았음에도 그녀를 보기 위해 약국을 찾아오고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상황이 변해 독일 부대가 퇴각할 때 마을사람들은 그 독일군의 시체 위에 엎드려 있는 그녀를 끌고 가 머리를 밀어버린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밀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녀의 가슴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에 그가 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여기에서 구멍이란 아브라함과 토록이 말한 ‘비밀묘지’에 해당한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살게 하면서 이따금 자신을 찾아오게 하기 위해 만드는 마음속의 ‘비밀묘지’, 바로 이것이 그녀가 택한, 아니 택했다기보다는 그녀에게 강요된 애도의 방식이었다.”(260쪽)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