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통일 항아리법’

입력 2012-05-18 18:01

전남 고흥 지역 노인 33명이 2009년부터 한 잔에 300원 하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고 매달 9000원씩 저축해 통일기금 2200여만원을 모았다는 기사가 최근 신문에 실렸다. 민·관 통틀어 국내 통일기금 모금의 첫 사례라고 한다. 김갑수(82)씨는 “나라는 되찾았지만 민족만은 함께 어울리지 못하지 않나”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예금통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문이 퍼져 요즘은 3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고흥 노인들의 ‘통일통장’의 액수는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통일 준비가 이들만의 일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통일 초기에 남북한 주민들의 소득 균등화 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들 것이란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통일 기금 마련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마땅하다.

그 중 하나가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줄곧 강조한 ‘통일 항아리법’이다. 1조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 내에 통일계정을 따로 둬 남북협력기금 불용액에다 민간 출연금 등을 합해 통일 재원을 쌓아가자는 것이 골자다. 그는 국회에 갈 때마다 2030년 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때 첫해 비용이 최소 55조원이나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통일 항아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일기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통일한국을 책임질 국가라는 점이 각인되고, 그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높아질 것이라도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북한을 자극할 소지가 있고, 10% 미만인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야권 논리에 막혔다.

류 장관의 도전은 19대 국회에서도 계속된다. 통일부는 지난 16일 ‘통일 항아리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류 장관은 지난 12일 문경새재 영남요에서 통일 항아리를 빚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류 장관이 이달 봉급을 통일 항아리에 넣겠다고 약속하는 등 분위기도 띄우고 있다.

과연 류 장관 임기 중에 ‘통일 항아리법’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현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추동력이 떨어지고, 통일에 부정적인 여론이 여전히 많고, 통일비용을 줄이는 일이 우선이라는 주장 등 난관이 적지 않은 탓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