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⑮ 노동시의 새로운 실험… 시인 이기인
입력 2012-05-18 18:11
노동자에게 돌려준 삶의 주체적 자리
여공이기 전에 꿈 많은 소녀들의 실존
이기인(45·사진) 시인은 인천 학익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익동은 인천 남부의 달동네를 끼고 있는 공장지대였다. 소년이 학교를 오가면서 본 풍경은 삭막했다. 철강회사와 방직공장과 냉장고공장도 있었다. 공장엔 외지에서 온 어린 여공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공순이’라고 부르던 그 소녀들은 대개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들을 통제하는 사람은 노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완장의 지휘를 받는 현실은 여공이라는 신분적 질서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세월은 흘러 학익동은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방직공장 소녀들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없지만 이기인의 기억 속엔 소녀들이 깊이 각인됐다.
“목화송이처럼 눈은 내리고/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따뜻한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제 가슴에 실밥/ 묻은 줄 모르고,/ 공장의 긴 담벽과 가로수는 빈 화장품 그릇처럼/ 은은한 향기의 그녀들을 따라오라 하였네/ 걸음을 멈추고/ 작은 눈/ 뭉치를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묻지도 않은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늘어놓으면서 어느덧/ 뚱뚱한 눈사람이 하나 생겨나서/ 그/ 어린 손목을 붙잡아버렸네// (중략)// 입김을 불고 있는 ㅎ방직공장의 굴뚝이,/ 건강한 남자의 그것처럼 보였네”(‘ㅎ방직공장의 소녀들’ 부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들에게 ‘소녀’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여공들을 계급적 약자라거나 불평등의 희생자로 규정하면서 좌파적 이데올로기의 색깔로 채색하곤 했던 사회적 시선의 눈금을 이기인은 조금 더 오른쪽으로 옮겨놓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라고 해서 언제나 슬픈 것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진학을 못하고 공장에 온 여공들은 교양에 대한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비록 사글셋방에 살면서도 백과사전을 들여놓거나 리본 커튼을 달아 방을 꾸미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나름 나약하지 않다. 그들도 그들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는 것이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눈사람을 만들며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거나 완성된 눈사람에게 눈을 박아주며 까르르 웃는 그들은 여느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해맑고 순수하다. 현실과 고투(苦鬪)하면서도 낭만과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의 내면을 이기인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시도는 열악한 노동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는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삶의 주체적 자리를 돌려주는 소중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제 시인의 시선은 더욱 깊고 넓게 확장된다.
“지난해 기침소리와 함께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고 쫓겨나온 이는/ 얼마 전에 새끼줄처럼 기다란 이력서를 써봤다/ 아파트 경비원이 되고 싶어서 꾹꾹/ 눌러쓴 이력서를 꼬르륵 꼬르륵 배고픈 편지봉투 속에 넣어두었었다(중략)/ 빗자루가 말끔히 쓸어낸 마당은 빗자루의 새 이력서가 되기도 하였다”(‘빗자루 이력서’ 부분)
소외된 이들을 향하는 이기인의 낮은 눈길은 고통과 희망을 오가는 삶의 장면 장면들을 정제된 시어로 포착해낸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이들은 과일장수, 청소부, 재개발지역 철거민, 건축공사장 인부, 외국인 노동자, 공장 노동자, 늙은 농부 등 하나같이 우리 시대의 하위자들이다. 그들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존재들이다. 고달픈 삶을 하루하루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일상은 슬픔과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럼에도 시인은 이러한 슬픔들을 눅눅함 없이 담담하게 그린다는 점이다. 이기인은 어떤 거창한 담론을 부르짖거나 현실의 심연을 파헤치려는 격정 없이 삶의 한 장면을 세심하게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삼는다는 차원을 넘어 이기인의 시가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어딘가에 있을 그 누군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당신’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진심어린 고백이기 때문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