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한 가족의 비극… “은행서 근무중인 임신 4개월 아내, 성난 시위대 방화로 유독가스에 질식사”

입력 2012-05-17 19:11

2010년 5월 5일 오전 8시,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마르핀 에그나티아 은행 앞. 재정 분석가로 일하는 앙겔리키 파파데나소포울로우는 출근하기 위해 남편의 차에서 내렸다. 신혼의 단꿈에 푹 빠진 앙겔리키는 임신 4개월. 오후 3시에 아이의 성별을 알아보러 남편과 병원에 가기로 했다. 오전에는 엄마, 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멀리 사는 언니는 동생을 보러 오후에 아테네로 올 참이었다.

그러나 오후 2시, 남편은 아내의 긴박한 전화를 받았다. 은행이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1차 구제금융과 긴축안에 반대하는 성난 시위대가 은행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녀는 유독가스에 쓰러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앙겔리키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은행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개인적 행복뿐 아니라 사랑하는 국가를 위해 공헌한다는 마음도 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앙겔리키의 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그녀를 추억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수학을 잘하는 똑똑한 학생이었던 그녀는 런던에서 대학을 마치고 2004년 그리스 올림픽 때 아테네로 돌아왔다. 2004년은 그리스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6년 후인 2010년 그리스는 절망적인 경제 위기로 빠져들었다. 그해 5월 2일,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에 1100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른 긴축안에 국민들은 반발했다.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앙겔리키는 사회 혼란 속에 뜻밖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가족들은 그녀가 죽은 지 2년이 지났지만 그리스 상황은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재총선을 앞둔 그리스 정국은 매우 불안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 크리스토스는 “앙겔리키는 그리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희생했지만 더 좋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