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환자, 기적을 만나다… 생각만 했는데, 로봇이 커피 심부름 척척
입력 2012-05-17 19:11
뇌졸중으로 쓰러져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고 말도 못하는 캐시 허친슨(58·여)씨. 이 전신마비 환자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로봇이 커피 병을 가져다준다.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커피를 마시는 데 성공한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미 브라운대 메디컬센터, 하버드 의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16일(현지시간) 전신마비 환자의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인공 수족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과학전문 ‘네이처’지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사고나 뇌졸중 등으로 근육이 마비된 환자의 재활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연구팀은 허친슨씨의 뇌에 어린이용 아스피린만한 크기의 센서 칩을 이식했다. 이 센서는 환자가 자기 팔을 움직이는 상상을 할 때 뇌 세포 수십 개의 전자 활동을 포착한 뒤 이 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한다. 컴퓨터는 이런 신경 신호를 로봇팔을 움직이는 명령으로 전환해 로봇팔을 통제한다.
허친슨씨는 생각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커피 병을 잡은 뒤 이를 입으로 가져와 빨대로 커피를 마신 뒤 다시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허친슨씨가 15년간 근육을 쓰지 못했어도 뇌가 여전히 유효한 동작 신호를 만들어 내고 있음이 밝혀졌다며, 이번 연구는 사고 등으로 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가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재활치료나 인공 수족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브라운대 뇌과학연구소의 존 도너휴 소장은 “마비환자, 특히 전신 마비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침에 커피잔을 잡고 마시는 동작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만으로 로봇을 움직이는 연구는 이제 걸음마를 뗀 셈이어서 팔다리를 못 쓰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적어도 몇 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용 인하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런 기술의 상용화가 5년 이내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