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다시 위기] 유럽중앙은행, 그리스 4개 은행에 유동성 공급 중단… ‘잔류’ 압박
입력 2012-05-17 18:57
그리스 사태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6일 국가부도(디폴트) 상태로 내몰리는 그리스 일부 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는 특단의 조지를 취했다.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따른 긴축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산소 호흡기’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그리스 국민에 유로존(유로 사용 17개국) 잔류 선택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 정책의 칼자루를 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존 강경 입장에서 선회해 유로존이 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CB는 자본 확충 노력이 미흡한 그리스 4개 은행에 대해 통상적인 유동성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 보도했다. 4개 은행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 은행은 ECB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그리스중앙은행이 집행하는 ‘긴급유동성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FT는 이번 조치에 대해 그리스에서 내달 치러지는 재총선을 ‘유로존 잔류 국민투표’로 전환하려는 유럽지도자들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했다. 재총선에서 긴축정책에 반기를 드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리자는 지난 6일 총선에서 2당을 차지했었다. 시리자의 승리는 긴축조치 불이행→유럽의 구제금융 중단→디폴트→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6일 “우리는 그리스가 EU 가족으로, 유로존 가족으로 남기를 희망한다”면서 “최종 결심은 그리스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ECB가 절대적으로 원하는 건 유로존 잔류”라고 거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그리스 채권 400억 유로 어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며 특히 독일에도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수는 EU와 메르켈 총리에 대해 정면 반박으로 맞섰다. 그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긴축의 질병이 그리스를 파괴하고 있으며 나머지 유럽으로도 퍼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지도자들은, 특히 메르켈 총리는 유럽인의 삶을 가지고 벌이는 포커판을 당장 집어치우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조건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메르켈 총리가 기존의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려 주목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미국 CNBC방송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위해 헌신하겠다”면서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 안에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부양책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열려 있다. 독일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재협상은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금융시장은 18일부터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에서 메르켈 총리가 어떤 진전된 조치를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