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간 ‘두 상수’ 감독 황금종려상 품을까… 임상수 ‘돈의 맛’·홍상수 ‘다른 나라에서’

입력 2012-05-17 18:04


제6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란히 진출한 임상수(50)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52)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가 지난 15일과 16일 각각 시사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상수’ 감독의 작품은 칸 영화제 수상 가능성을 두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완성도에 대한 이목이 쏠렸다. 최고위층 재벌가의 탐욕을 그린 ‘돈의 맛’과 외국 여성의 눈에 비친 한국 남자를 다룬 ‘다른 나라에서’의 장단점을 소개한다.

임상수 ‘돈의 맛’… 솜씨좋게 요리한 탐욕의 뒷맛

‘돈의 맛’에 나오는 재벌가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탐욕적인 캐릭터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백씨 집안 안주인 백금옥(윤여정), 필리핀 출신 하녀와 은밀한 관계를 갖는 남편 윤 회장(백윤식), 백씨 집안의 뒷일을 도맡아 하며 점점 돈 맛을 알아가는 비서 영작(김강우), 그런 영작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다가가는 장녀 나미(김효진).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충격적으로 전개된다.

임상수 감독은 호화 생활을 영위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여러 사회적 이슈를 상징하는 장면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백금옥 여사가 남편 윤 회장을 통해 5만원권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검찰 고위 간부의 자동차 뒤 트렁크에 넣어주면서 “저희 돈은 뒤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또 윤 회장이 성 상납 연예인 자살 사건을 거론하며 “나도 그 아이 있는 자리에 함께 한 적이 있는데, 그 후에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고(故) 장자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들 윤철(온주완)이 “할아버지에게 받은 60억(원)으로 200조(원)짜리 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았다”는 대사는 재벌의 탈세를 통한 증여와 비자금 및 돈세탁을 연상시킨다.

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임 감독은 “재벌가 이야기를 많은 드라마에서 다뤄왔듯이 ‘돈의 맛’도 그 중 하나다. 천민자본주의 등 그런 걸 비판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재벌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능멸하며 살지만 과연 그들은 행복하게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여배우 성 상납 사건은 결말이 충격적이었는데, 이걸 내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비상식적인 최상류층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영화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4) ‘오래된 정원’(2007) 등 독특한 소재로 한국의 정치·사회를 비꼰 임 감독의 연출 색깔과 맞닿아 있다. 각종 사회 문제에 메스를 가하면서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대사로 킥킥 웃음 나게 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백금옥을 열정적으로 연기한 윤여정과 괴팍하면서도 인간적인 성격의 윤 회장 역을 실감나게 해낸 백윤식이 영화에 힘을 보탰다.

‘돈의 맛’은 ‘하녀’(2010)의 후속 격이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나미가 자라 성인(김효진)이 됐다는 설정이고, ‘하녀’의 내용이 등장인물의 대사로 언급된다. 임 감독은 ‘하녀’가 대중들을 흡입하는 데 미진한 부분이 있어 새로운 인물로 ‘돈의 맛’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대 칸 영화제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 다수 수상했다는 점에서 영화에 거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국내 관객 입장으로 볼 때 ‘하녀’가 그랬듯이 ‘돈의 맛’ 역시 각종 부조리한 부분이 단편적으로 전개될 뿐 긴밀하게 어우러지지 못해 스릴과 긴장감이 떨어지는 점이 아쉽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홍상수 ‘다른 나라에서’… 유머·재치로 풀어낸 삶의 통찰

안느라는 이름의 세 여인이 각기 전북 부안의 해변마을 모항으로 내려온다. 첫 번째 안느는 잘 나가는 감독이고, 두 번째는 한국 남자를 비밀리에 만나는 유부녀이며, 세 번째는 한국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이혼녀다. 어머니와 함께 빚에 쫓겨 이곳에 내려온 영화과 학생(정유미)이 안느의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쓴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되는 학생의 단편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이것이 모여 ‘다른 나라에서’의 스토리가 된다. 이런 제작 과정은 시간 흐름에 따라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지는 홍상수 감독의 기존 영화와 맥을 같이 한다. 1부의 감독, 2부의 유부녀, 3부의 이혼녀는 모두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화는 프랑스 여인이 한국에 살면서 겪는 일상과 관습 등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1부는 안느 감독이 한국 감독 종수(권해효), 그의 아내(문소리)와 함께 휴양지에 놀러 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안느는 자애롭고 너그러운 성품의 캐릭터로 나온다. 한국의 주변 사람들도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2부에서는 안느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 문수(문성근)를 만나러 휴양지에 온 안느는 조금 늦겠다는 문수의 휴대전화 문자에 낮잠을 자다 꿈을 꾼다. 해변을 거니는 안느에게 문수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래 주려고 그랬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꿈에 불과하고 뒤늦게 나타나 술을 마시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문수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3부는 이혼녀 안느가 한국의 민속학자(윤여정)와 휴양지에 놀러 와 종수 부부(권해효 문소리)를 만나는 이야기다. 종수가 안느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갯벌로 데리고 가 키스를 하려다 아내에게 들킨다. 이 대목에서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만 보면 다들 미쳐!”라는 윤여정의 대사가 쓴웃음을 자아낸다.

3가지 이야기에는 전부 해상 안전요원(유준상)이 등장한다. 1부에서는 안느와의 짧은 만남이지만 그녀에게 사로잡힌 안전요원의 심정이 애틋하고, 2부에서는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안느와의 인연, 3부에서는 ‘희망의 등대’를 찾아나서는 안느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안전요원을 그렸다. 대사를 위한 대사가 아닌 일상 언어를 툭툭 던지는 유준상의 연기가 익살스럽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는 이런 상투적인 질문 대신 안느가 안전요원에게 “등대는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 것으로 주제를 이야기한다. 망망대해에 놓인 조각배 같은 우리의 삶을 유머와 재치로 버무리는 홍 감독의 연출 솜씨는 칸 영화제에서 충분히 어필할 만하다.

그러나 선문답처럼 대사를 주고받는 홍 감독 특유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3가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위페르의 다양한 표정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3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