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세상에 공돈은 없다

입력 2012-05-17 18:42


“차기 대통령은 공직자의 도덕성 확립을 국정 운영의 첫째 과제로 삼아야”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돈 많은 대통령이니까 돈에 대해서는 깨끗할 것이고, 그런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도 공돈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하면 돈 문제로 친인척이 어려움을 당했고, 바로 전임 대통령은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돈 문제로 국민 앞에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대통령 직을 수행하리라고 믿었다. 대통령 주변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월급만으로 살아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대통령이 그에게 뒷돈을 주면서라도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마감을 몇 달 앞두고 그 소박한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돈 많은 대통령이나 가난한 대통령이나 주변의 권력자들이나 모두 돈에 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그 값을 받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음도 알게 됐다.

공직자가 돈을 받아도 대가를 치르지 않았으면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공직자의 부정을 법으로 감싸주는 ‘이상한 법’이다. 점심 한 끼를 얻어먹었으면, 다음에는 내가 사려는 것이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그런데 몇 백만원도 아니고 몇 천만원, 몇 억원을 주고받으면서 대가성이 없다거나, 인간적인 정리에서 도움을 받았다거나, ‘빌려 쓴 돈’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본다.

공직자가 사업자나 로비스트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그 돈에 대해 구체적인 대가성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값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공직자와 돈거래를 했다는 것은 그 돈에 대한 값을 주고받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포함돼 있으므로 실질적인 대가성과 관계없이 혹독하게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예전에 어느 지역에서 돈을 좀 가진 사람이 그 지역 권력의 핵심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이따금 선물도 하고, 용돈도 주었다. 그 사업가는 돈의 사용처를 하나도 빼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가, 공밥이나 공술을 얻어먹은 권력자들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자 리스트를 들이대어 그 값을 톡톡하게 받으려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받는 쪽에서는 공돈으로 받았겠지만, 주는 사람은 철저하게 그 값을 배로 받겠다는 계산으로 주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만은 정확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절대로 공돈을 쓰지 않는다. 이들에 비해서 고위 공직자들은 이러한 돈의 생리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조금만 지위가 높으면, 자기 돈을 내서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술을 마시고, 선물을 하지 않는다. 자기 지갑을 열지 않고도 품위 있게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돈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하고, 자기 돈을 쓰는 아쉬움이나 즐거움도 모른 채 살아왔다. 이러한 사람이 아직도 고위 공직자들 중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돈은 없다’는 돈의 정직성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고위 공직자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에게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가 되려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청렴과 공익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엘리트는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에 초연할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19대 국회에 초선 의원들이 많이 진출했다. 그들은 국회위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중에 ‘청렴과 공익’이 첫째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은 자기를 정직하게 점검해 청렴과 공익성에 문제가 있다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옳다.

차기 대통령은 다른 일을 제쳐두고라도 공직자의 도덕성 확립을 국정 운영의 첫째 과제로 삼아야 한다. 공직자의 도덕성은 국가 백년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선주자들 가운데 이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길언 작가 본질과현상 편집·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