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사퇴와 출당, 제명
입력 2012-05-17 18:33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거취 문제가 초미의 관심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혹은 해결이 가능한지 여부가 통진당 혁신의 1차 관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제기와 진상조사결과 발표,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를 거쳐 어렵게 구성된 통진당 혁신비대위는 경선을 통해 선출된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보자 14명의 자진사퇴로 가닥을 잡았다. 공당으로서 절차상 하자가 확인된 당선자를 국회로 보낼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의 당연한 귀결이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은 진보진영의 공멸을 막기 위해 ‘무릎을 꿇고라도’ 자진사퇴를 호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 당권파 이석기 당선자 등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선 비례대표 사퇴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 파국으로 치닫는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하자 있는’ 경선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국회 입성이 관철될 공산이 크다.
통진당 1차 해법은 자진사퇴
출당은 진정한 해법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 194조 4항에 따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출당 처분을 받으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들이라 하더라도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한적이지만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통진당 비례대표의 의회 진입 차단은 이와 무관하고, 정당 내 공천 절차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외에 대안이 없게 돼있다.
자진 사퇴나 탈당을 거부할 경우 의원 제명 처분도 가능하다. 국회에서 제명안을 발의해 본회의 의결을 거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의원 제명은 헌법 64조에 규정돼 있고, 정족수도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으로 엄격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자진사퇴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기도 하다. 이 당선자 등이 사퇴를 거부하는 것은 종북주의자가 우리 의회에 들어가도 좋으냐는 논쟁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여러 측면에서 타당성이 없다.
우선 하자가 발생한 선거절차에 당선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회피하면 공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사태가 진행되면서 구 당권파의 민주적 절차 관리 부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자기 파벌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려는 당 회의를 폭력을 동원해 방해했다. 선거관리 부실이 실수가 아니라 절차적 민주성에 대한 허약한 의식에서 비롯됐음을 고해성사한 형국이 됐다.
나아가 이 당선자 등의 사퇴는 통진당 혁신의 출발점이다. 이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한 당을 민주적이고 합리적 체제로 거듭나게 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방안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가죽이 아니라 내장이라도 끄집어낼 것이며 심장이라도 곪은 데가 있다면 도려내겠다”는 강 혁신비대위원장의 절박한 현실 인식에 이 당선자 등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사퇴 거부는 소아병적 발상
이 당선자 등이 버티는 것은 진보 전체에 큰 짐이 된다. 이들이 의정생활을 하는 동안 보수 진영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 야권 연대는 한발도 앞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 진영 전체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의회 진출만은 관철시키겠다는 것은 소아병적 발상이다. 이 당선자는 “국민 여론도 해결책이 비례대표 자진사퇴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더 버틸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게 일반의 시각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