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名 시인’ 페소아의 울림있는 자서전… ‘불안의 책’

입력 2012-05-17 18:17


불안의 책/페르난두 페소아(까치·1만2000원)

이명(異名)은 가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명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장치이지만 이명은 다른 인격의 표현이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 겸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는 평생 70개가 넘는 이명으로 작품을 썼다. 그의 내면엔 수많은 인격들이 존재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산문작품이자 대략 20년 동안 쓴 일기에 해당하지만 포르투갈어 원서도 1982년에야 처음으로 출판됐다. 이 산문에서 페소아는 자신을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라는 이명으로 적고 있다. 소아레스는 초라하고 시시한 삶을 살아가는 직물회사의 회계사 보조로 페소아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체지만 여기엔 페소아의 인생이 반영돼 있다. 생계를 위해 영어 통신문을 번역하던 페소아의 작업도 소아레스의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안에서 다양한 개성을 만들었다. 나는 지속적으로 개성을 창조한다. 매번 꿈을 꾸기만 하면 나의 꿈은 꿈을 꾸기 시작하는 또 다른 사람으로 구체화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하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파괴되었다.” 어디까지가 ‘나’의 정체성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정체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종의 시대에 그의 산문은 다면적인 통찰력을 선사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