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려던 30대 희귀병 환자 경찰관 도움의 새 희망 품어

입력 2012-05-17 14:19

[쿠키 사회] 높은 이자에 시달려 인생을 포기하려던 30대 희귀병 환자가 경찰관의 신속한 도움으로 삶을 잇게 됐다.

2009년부터 경기 포천에서 소규모 자동차공업사를 운영 중인 장모(35)씨가 삶의 끈을 놓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1일 새벽.

월 600여만 원의 천문학적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장씨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버지(75)와 동생(32)에게 마지막 전화를 건 뒤 이날 오후 1시쯤 스스로 휴대전화를 껐다.

2남 중 장남인 장씨는 출생 직후부터 뼈가 부러지면 붙지 않는 ‘선천성 골형성 부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사에 처음 들어가 기름때를 손에 묻혔을 때나 전공을 살려 자동차검사소를 겸한 공업사를 직접 개업했을 때나 언제나 든든하고 다정한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다.

본능적으로 그의 목소리에서 ‘불행한 낌새’를 알아차린 가족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백방으로 그의 행적을 수소문 했으나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 탓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기 연천경찰서에 “8000만원의 빚에 짓눌려온 아들이 자살할 것 같다”며 다급한 신고전화를 걸었다. 연천경찰서 지능팀 박중현(36) 경장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장씨의 행방을 다각도로 추적한 끝에 2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3시쯤 군남면 3거리에서 ‘농약’과 ‘수면제’를 들고 서성대던 장씨를 발견했다.

박 경장의 어깨를 부여잡고 한동안 푸념을 늘어놓던 장씨는 “법이 정한 상한선을 넘는 이자는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자 비로소 ‘자살’의 유혹을 떨쳤다.

경찰의 후속조치도 장씨를 안심시켰다. 경찰은 17 장씨에게 악덕 사채업자 못지 않게 많은 이자를 뜯어온 혐의(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위반)로 최모(39·보험회사 직원)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최씨는 1년여 동안 “빨래 돈을 갚으라”며 왜소한 체격의 장씨를 수시로 폭행하고 장씨의 행적을 실시간 감시하며 잔혹한 ‘빚독촉’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섰던 장씨는 “농약을 마시고 죽을까 했는데 다시 한번 세상의 거친 파도를 넘어보기로 했다”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박 경장을 봐서 더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사정을 잘 아는 최씨의 ‘인면수심’은 박 경장에게 덜미를 잡혔다.

보험회사 영업직인 최씨는 심약한 장씨가 자살할 조짐을 보이자 최근에는 자신의 처남을 보험금 수령자로 정한 뒤 장씨 명의의 5000만 원짜리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등 파렴치를 보였다.

최씨와 장씨의 악연은 보험계약을 빌미로 시작됐다.

장씨는 당초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을 내기로 계약하고 영업에 들어간 공업사 운영이 부진하자 2년 전 1000만원을 평소 보험을 넣던 최씨에게 처음 빌렸다. 이게 화근이었다. 최씨가 강요한 연 200% 가까운 이자는 장씨가 갚기에 너무 버거웠다.

빚을 얻어 이자의 이자를 갚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러나 살인적 이자를 감당하기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형의 고민을 보다 못한 동생과 함께 야간 대리운전까지 해가며 그동안 원금과 맘먹는 8200여만 원을 갚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것이다.

경찰관의 도움으로 제2의 삶을 잇게 된 장씨는 연천 청산면 장애인복지시설 ‘동트는 마을’에서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희망찬 내일을 꿈꾸고 있다. 연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