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지하조직 만든 시리아인들… 부상·고립된 반정부 인사들 돕기위해 음식·의약품 등 구호물자 전달
입력 2012-05-16 19:17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주민 2명이 최근 승용차로 반군의 거점 도시인 홈스를 향해 꼬박 이틀 동안을 달렸다. 차량에는 부상자 치료에 필요한 혈액 주머니 박스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으로 현장 접근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이들은 혈액주머니를 들쳐 메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간선도로가 아닌 뒷골목을 100㎞ 달린 끝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리아 사태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유혈충돌로 부상하거나 고립된 난민들을 돕기 위한 지하조직에 몸을 담은 시리아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리아인들이 목숨 건 구호활동에 나서게 된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다.
14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 그동안 정부군의 폭격으로 숨진 사람이 1만명에 육박한다. 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인 적신월사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음식이나 물, 거처가 필요한 난민은 15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이런 구호행위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의약품을 전달하다 붙잡히면 예외 없이 체포해 구금한다. 이들을 방치하면 장기간의 억압으로 와해된 시민사회가 다시 세력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NYT는 시리아 정부가 1년이 지나도록 꺾일 줄 모르는 반정부 투쟁에 ‘분할 점령’ 전략으로 그동안 대처해왔고 자중지란을 유도하기 위해 종교, 종족, 계급, 지역 등에 따른 파벌감정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난민지원 활동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탄압이 심해질수록 지하조직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체포 위협을 무시한 채 난민들에게 필요한 음식과 옷, 의약품 등 각종 구호물자를 전달한다. 다마스쿠스의 한 대학생은 “우리는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말과 행동을 할 때에만 비로소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난민지원 활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시민들이 난민지원에 발 벗고 나서는 데 대해 시리아 정부는 당혹해하고 있다. ‘분할 점령’ 전략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게 활동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시리아 정부는 단속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이고 있다. 지난달 다마스쿠스에서는 2명의 여성이 대낮에 카페에서 체포됐고, 이번 달에는 의사의 아들이 의약품을 모으거나 전달하다 체포됐다. 한 남성은 홈스의 기독교도 어린이에게 부활절 초콜릿을 나눠줬다가 몇 주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지하조직에 가담한 한 사회학자는 “현 정권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개념을 없애고 싶어 한다. 그들은 국민이 연대감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