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봄철 운동회
입력 2012-05-16 18:19
“엄마∼ 내일 운동회 때 엄마가 꼭 와서 나랑 손잡고 춤도 추고 달리기도 해야 하는데 엄마 내일 올 수 있어?” “그럼 누구 운동회인데∼ 꼭 갈 테니까 걱정 마세요.”
올해 송호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민철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벌써 운동회가 시작된 것처럼 이것저것 내일 함께 할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민철이 뿐만 아니라 2학년 대영이, 4학년 영록이. 6학년 문규까지 우리집 초등학생 4명과 유치원생 채영이와 수혁이까지 모두 6명의 운동회가 내일있습니다. 엄마는 한 명인데 아이 여섯 명 모두와 게임을 하려면 아무래도 내일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집에서 쉬는 중학교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6명 아이와 함께 뛰고 뒹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부지런히 김밥을 싸고 물이랑 음료수, 아이들이 평소 먹고 싶어하던 과자까지 챙겼습니다. 그리곤 개교기념일이라 집에 있던 인희와 예지, 세은이, 그리고 아파서 조퇴한 고등학생 혜지와 대학생 연지까지 집에 있는 식구들을 총동원해 돗자리를 준비해 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
벌써 운동회가 시작됐는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1,2학년 아이들이 하나 둘 발맞춰 운동장 가운데로 걸어오는데 민철이와 대영이가 손짓으로 빨리 오라고 부릅니다. 급한 마음에 우리집 막둥이 에스더를 언니들에게 맡기고 먼저 손잡고 달리기를 하는 민철이와 섰습니다. 눈짓으로 2학년 대영이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아주 열심히 구르고 뛰어 2등으로 결승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곤 뒤돌아 민철이에게 잘했다고 말하는 대신 엄지손을 내밀며 얼른 2학년 대영이에게 뛰어 갔습니다.
대영이는 운동회에 엄마나 가족이 함께 참여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저희집으로 와서 처음 치르는 운동회여서인지 혹여 제가 오지 않을까봐 걱정스런 눈으로 저를 보다 가 제가 뛰어오자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엄마 괜찮어? 힘 안 들어?”하곤 제 손을 있는 힘껏 잡았습니다. 대영이는 장애물을 넘고 구르며 뛰는 동안 제 손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달렸습니다. 등수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저와 함께 결승선에 들어가는 대영이는 개선장군처럼 기세등등, 행복충만의 얼굴로 제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불쑥 내민 표창장에 울컥
이후엔 4학년 영록이랑 공굴리기와 훌라후프를 하고, 문규와는 릴레이달리기를 하고, 유치원생 채영이와 수혁이랑은 무용을 하고…. 이날 저는 온 몸을 불사르듯 돌아가면서 여섯 명의 아이들 엄마로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무슨 정신으로 아이들을 씻기고 누웠는지 한 시간을 잤습니다. 잠결에 에스더가 제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만지는 바람에 깨보니 3평 방에 에스더와 여섯 녀석이 붙어서 자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들 무척이나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에스더 우유를 먹이고 일어서는데 6학년 문규가 불쑥 상장을 하나 내밀었습니다. “어머 우리 문규 상을 받았네, 무슨 상장일까?” 문규의 상장을 보고 저는 그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문규를 끌어안았습니다.
‘표창장-6학년 1반 정문규 위 학생은 학교 규칙을 잘 지키고 밝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착하고 바른 행동을 실천하여 제89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이 상을 주어 칭찬합니다. 2012년 5월 4일 송호초등학교장’
지난해 12월 20일 저희 집으로 오기 전에 있던 학교에서 가장 문제아였던 문규가, 세상에…. 한 식구가 된 뒤론 단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늘 밝은 얼굴로 제 기쁨이 되어 주었는데 올해 어린이날을 맞아 전교 어린이 대표로 표창장을 탄 것입니다. 오늘 좀 더 일찍 갔더라면 전교생 앞에서 문규가 상 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멋진 상으로 저에게 감동을 준 문규가 대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올해 어린이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섯 명의 엄마로 운동장을 날아다녔고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의 상장을 받아 든 최고로 행복한 엄마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제가 통닭을 쏩니다. 무척이나 행복한 저녁시간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