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영기 (4) 도망다니다 딱 걸린 ‘김성일 부부성경공부’ 모임
입력 2012-05-16 18:05
“여보, 당신도 착실히 교회에 나가 빨리 집사 직분을 받으면 좋겠어요.”
“집사를 하면 누가 집을 사준대? 하나님이 집이라도 사준대?”
아내가 교회에 대한 말만 꺼내면 어떻게든 그에 대해 반박하고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우리가 집을 사게 됐다. 아내 명의로 돼 있던 땅이 갑자기 수용되면서 논현동에 자그마한 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께서 ‘봐라 이 놈아! 네 말처럼 내가 진짜 집을 사주지?’ 하시는 것 같았다.
“이 책 한 번 읽어봐요. 너무 재미있어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아내가 불쑥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땅끝으로 가다, 땅끝에서 오다’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책을 받아 든 나는 안 하던 행동을 하는 아내의 속내가 궁금하고 의심스러웠다. 무슨 공작을 꾸미는 것 같았다. ‘그래, 공작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책 읽는 건데 뭐…’
그날 저녁 심심풀이 삼아 펼쳐든 소설에 나는 빠져들었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멋진 문체에 매혹돼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어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어제 당신이 준 책 밤에 다 읽었어.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서인지 참 재미있더라고. 혹시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은 없을까?”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책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연 아내의 얼굴색이 활짝 펴지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러쿵저러쿵 책 이야기를 늘어놨다. 역시 아내의 공작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퇴근하면서 아내는 선물이라며 묵직한 쇼핑백을 내게 건넸다. 김성일 작가가 쓴 책들이었다. ‘제국과 천국’ ‘홍수 이후’ ‘성경과의 만남’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등 그의 소설과 간증집이었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의 책은 하나같이 나를 재미와 감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서점에 들르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그 작가의 신간이 없나 해서였다. 그러던 차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내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나와 아내에게 희한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 같이 김성일 작가가 인도하는 부부성경공부모임에 나가시죠. 너무 재미있고 은혜스러워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던 책을 쓴 사람이 이끄는 모임에 나가자는 게 아닌가. 처음엔 우연인가 하다가 이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친구가 사전에 담합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이끌었던 것이다. 그래도 구미가 당겼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작가를 매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게다가 아내 친구의 남편이 모 방송국 PD라고 해서 더욱 좋았다. 성형외과 의사가 PD와 알고 지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얄팍한 계산이었다.
1992년 3월부터 우리 부부는 김성일 작가의 ‘헤브론 부부성경공부모임’에 나갔다. 장소도 마침 내가 근무하던 국립의료원 인근 단독주택이었다. 하지만 거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상당한 성경 지식과 신앙 관록을 가진 이들 속에서 아예 신앙이 없었던 나는 열등감에다 소외감 같은 감정만 안고 돌아왔다. 김 작가가 “어느 교회에 나가세요?” 하고 물을 땐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한 번 나가보고 그만두기에는 좀 그랬다. PD라는 아내 친구의 남편도 못 만났기에 몇 번만이라도 나가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자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모임에 나가는 토요일이 기다려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성경공부모임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두신 곳이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그때 배우고 깨우쳤던 것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