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저축은행이 사는 길은

입력 2012-05-16 18:18


“저축은행에 ‘상호’란 모자 착용을 의무화하고 예금보호 한도도 점차 줄여가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1·2연)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관계 속의 존재가 되고 의미가 된다. 다만 정 반대의 경우, 엉뚱한 이름 탓에 존재의 의미가 왜곡될 수도 있다. 요즘 부실·비리의 대명사처럼 도마에 오른 저축은행이 그런 처지다.

1997년 환란을 거치면서 부실투성이 상호신용금고의 이미지 쇄신책으로 나온 것이 ‘상호저축은행’이란 명칭 부여였다. 은행도 아닌 게 은행으로 불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그리 믿고 예금을 맡기고 거래를 텄다.

수도권의 한 대형 저축은행 전 간부 A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저축은행에 다닌다는 사실을 늘 부끄러워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억지로 끌어올리기, 가공의 당기순익,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뭉텅이 대출 등 자신이 관여하는 업무는 신앙인으로서, 아니 보통 시민으로서도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2차 퇴출 저축은행 명부에 A씨가 근무하던 곳이 들어 있었다. 일반 기업은 경영에 실패하면 손실이 나고 심하면 바로 부도를 맞지만 금융기관은 손실이 발생해도 예금 등의 자본조달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무제표를 슬쩍 손봐(속칭 ‘마사지’) 가짜 흑자를 만들어 부도를 피하기 쉽다. 모든 금융기관에 철저한 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지난 1년 반 동안 저축은행 5곳 중 1곳은 영업정지를 겪었다. 저축은행 자체의 비리 등이 1차적인 원인이겠으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겠다.

3차 구조조정이 벌어진 직후 소규모 지방 저축은행을 경영하는 B씨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역시 그간의 저축은행을 보는 견해가 A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B씨는 일찌감치 가짜 흑자를 경계해왔던 터라 규모는 작지만 탄탄하다고 했다.

B씨는 “환란 때 난다 긴다던 은행들도 우수수 퇴출되는 마당에 상호신용금고의 부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때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좀더 근본적인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이름만 살짝 바꿔놓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 데서부터 지금의 저축은행 부실문제가 시작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2010년 3월 상호저축은행법을 개정해 상호저축은행 명칭에서 ‘상호’를 떼어내도 무방한 것으로 함으로써 상호저축은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제9조제1항).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상호저축은행에서 ‘상호’를 지웠다. 상호신용금고 시절의 상호신용금고중앙회는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상호저축은행연합회로, 2010년 이후에는 저축은행연합회로 변신했다.

최근 여기저기서 저축은행 이름을 상호신용금고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쏟아진다. 그와 더불어 저축은행의 예금보호한도가 은행과 같은 5000만원까지라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감독당국은 10년 전 자신들이 한 결정을 쉽게 뒤집지는 못하겠지만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 본연의 존재와 의미로 거듭나려면 수정은 불가피하다.

다만 갑작스러운 변경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니 조율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우선 상호저축은행법 제9조제1항을 개정해 저축은행 이름 앞에 ‘상호’라는 모자를 의무적으로 쓰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예금보호한도도 연차적으로 줄여 가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축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 확립이다. 금리 10% 미만은 은행, 10∼20%는 카드사, 30% 이상은 대부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고 양극화 심화로 음식점, 여관, 옷·빵·신발가게 등 서민 창업이 안 되고 있어 ‘상호’저축은행이 끼어들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저축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산업 전체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면 금융산업도 우리에게 꽃이 될 터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