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당하던 다문화 청소년 연쇄방화… 주택가 세차례 불지르고 인근 학교에 화염병
입력 2012-05-15 22:07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던 다문화가정의 청소년이 연쇄방화를 저지르다 붙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3월 화양동 일대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하루 세 곳에 불을 질러 22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힌 혐의(현조건조물 방화 등)로 정모(17)군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정군과 함께 화염병을 만들어 인근 중학교에 던진 친구 전모(17)군은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정군은 3월 3일 화양동 한 연립주택 옆에 쌓인 폐지에 1회용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여 건물 외벽을 4층까지 태웠다. 소방차가 출동해 불을 끄는 것을 지켜본 정군은 2㎞ 정도 떨어진 자양동 주택가로 걸어가 폐종이박스에 불을 붙였고 다시 50m쯤 떨어진 인근 주택가 주차장의 쓰레기더미에도 불을 질렀다. 지난 1월에는 친구 전군과 함께 영화 ‘괴물’의 장면을 재연하겠다며 화염병을 만들어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 건물에 던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군은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남들과 다른 생김새 때문에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푸른 눈에 하얀 얼굴의 정군은 1995년 러시아 유학중이던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무렵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정군을 떠났다. 정군은 한국으로 들어와 할머니 손에 맡겨졌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심한 우울증으로 6개월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가출을 거듭한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지난해 5월 다시 자퇴한 뒤 가출했다. 정군 할머니는 같은 해 6월 가출한 정군을 찾아다니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경찰은 정군이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의 도움을 받아 심리상담을 실시할 예정이다.
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