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채권추심 ‘기승’… 채무관계 없어도 소멸시효 지났어도 법원에 지급명령 신청
입력 2012-05-15 19:17
생활보호대상자인 A 할머니는 10년 전 건강식품을 할부로 구입한 후 남은 할부금 원금 10만원 정도를 납부하지 못했다. 물품대금 청구채권의 소멸시효(3년)도 지났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은행계좌에 있던 생활비가 압류됐다. 채권추심업체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한 뒤 가압류 명령을 받아 원금과 10년간의 이자를 합산한 60만원을 압류했기 때문이다.
15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악덕 채권추심업체들이 부실 악성채권을 헐값에 넘겨받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한 뒤 채무자들의 계좌를 압류하는 방식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많다.
법원의 지급 명령제도는 재판 없이 서면 검토 후 결정등본을 보내고 채무자로부터 이의가 없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법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라도 채권추심업자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채무자에게 지급명령을 한다. 채무자가 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면 구제해 주고, 그러지 않으면 결국 계좌가 압류된다. 악덕 채권추심업체들은 법원의 지급명령을 받은 채무자 상당수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는 맹점을 악용하고 있다.
심지어 채무관계가 없거나 대금을 이미 변제했는데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일종의 소송사기도 많다.
한국소비자원 부산본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채권추심 관련 소비자 상담 9443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1.5%가 계약사실이 없거나 대금을 변제했는데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소비자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적극 대응한 경우는 18.7%에 그쳤다. 방법을 몰라 대응하지 못해 채권이 확정된 경우도 9.7%나 됐다.
채권추심 유형은 소멸시효 경과 계약건에 대한 추심이 26.5%(2505건)로 가장 많았다. 사업자 폐업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렌털 계약건이 18.8%(1771건), 계약사실이 없는 계약이 9.3%(880건), 계약해지가 완료된 경우 5.6%(528건), 대금변제가 완료된 계약 5.4%(506건) 등이다.
채권추심 피해는 수도권이 3144건, 부산, 울산, 경남은 2986건이다.
채권추심과 관련한 주요 품목은 정수기(렌털)가 2622건(27.8%)으로 가장 많았고 건강보조식품 1234건(13.1%), 전집물 및 교재류 663건(7%) 등의 순이다.
한국소비자원은 “법원에서 지급명령 신청서가 우송돼 올 경우 반드시 14일 이내에 지급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신종수 기자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