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스토리(Story)가 없잖아!
입력 2012-05-15 18:17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서영은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결혼한 뒤에도 그녀는 한 신문사에 소설을 연재 했다. 한번은 새벽 4시까지 원고에 몰두했지만 도무지 글이 진척되지 않았다. 그 때,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가려다 글쓰기에 고민하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힐끗 쳐다본 김 선생이 일갈을 했다. “스토리가 없잖아, 스토리가.”
이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서 선생은 담론(談論)이라는 컷을 장면화 하는 사람들이 소설가라고 말했다. 담론은 있지만 스토리가 없어서는 결코 소설가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그야말로 스토리 전성시대다. 무형인 스토리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스토리가 없어서는 소설가 뿐 아니라 어떤 것도 제대로 하기 어렵게 됐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가? 대통령의 여러 자격 요인 가운데 하나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사람, 스토리를 만드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안철수 김두관 등 주요 대선 주자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샐러리맨 신화를 쓴 사람’이라는 스토리가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스토리 있는 인생이 자산이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역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와는 차별화된 인생 스토리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 그는 고3때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하다 무기정학을 당했다. 대학에서도 두 번의 제적을 당한 끝에 25년 만에 졸업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며 겪은 인생 역정 스토리가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 이야기’에 한없이 기대 갈 수는 없다. 자신만의 스토리와 브랜드가 절실하다.
목회자들 역시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젠 강단에서 담론만 이야기해서는 도저히 먹혀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아무리 외쳐도 그 사랑이 스토리화 되지 않으면 성도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않는다. 스토리 없는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만 나열될 때, 사람들은 그 사랑이라는 담론이 던지는 추상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담론 자체의 힘이 약해진다.
지금 한국 교회는 ‘강단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 위기 가운데 하나는 담론을 스토리화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 것일 게다. 강단에서 선포는 넘친다. 그러나 그 선포를 뒷받침 할 스토리는 빈약하다. 스토리 가운데 가장 좋은 스토리는 ‘살아낸 이야기’다. 목회자가 그 담론을 실제로 살아낸 스토리와 연결시킨다면 성도들은 담론 자체에 강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담론을 삶으로 살아내 스토리화 하고, 그 스토리가 담론을 지지할 때 강단은 강화된다.
목회자들은 지금 묵묵히 설교를 듣고 있는 성도들이 어쩌면 마음속으로 ‘스토리가 없잖아, 스토리가…’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