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정원 일의 즐거움
입력 2012-05-15 18:24
2006년 작고한 영국의 유명 정원사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관리가 수월한 정원’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딱 잘라서 말했다. “그런 정원은 없다.” 그는 금융인이었지만 훗날 어머니의 정원을 물려받아 ‘그레이트 딕스터’라는 정원을 만들어 초원풍 메도 정원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의 정원에 가보면 로이드의 말이 이해된다.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하고, 지붕 위까지 올라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보면 정원사의 노련한 솜씨보다는 식물 자체가 말 그대로 자체 발광이다.
그런데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지붕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는 덩굴 식물 줄기엔 정원사가 일일이 묶어 준 끈이 보이고, 풍성한 잎사귀 밑을 들춰보면 곱게 채로 친 고운 거름이 가득하다. 실제로 부지런한 정원사는 거름을 그냥 쓰지 않고 채로 받아 곱게 만들어 뿌려준다. 그래야 공기층이 많아져서 식물의 뿌리가 잘 파고들고 영양분도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두 번째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이기 전에 유명한 정원사이자 곡물재배사였다. 버지니아에 있는 그의 농장 몬티첼로에는 복숭아, 사과, 체리 등 과실수의 종류가 130여종이 넘었다. 자신의 정원 일을 꼼꼼한 기록으로 남긴 덕분에 질 좋고 맛 좋은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당시 독을 지녔다고 오해를 받고 있었던 토마토를 직접 키워 유세 현장에서 토마토 한 양동이를 먹어 해가 없음을 알리기도 했다. 제퍼슨이 아니었으면 훌륭한 토마토를 식탁에서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정원사로서의 삶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했다. “흙일을 하는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다.”
가끔 나도 일년 사계절 꽃이 화려하면서도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정원을 디자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대답처럼, 또 토머스 제퍼슨이 몸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땀 흘리지 않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재간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형이 좋은 큰 나무를 몇 그루 심고 거기에 잔디를 깔아 깨끗하게 정리된 풍경을 선호하는데, 이런 정원이라면 관리가 수월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덩굴장미가 담장을 타오르고, 붓처럼 말아진 붓꽃이 “펑!” 하고 꽃을 펼쳐내고, 꽃대가 휘어질 정도로 큰 꽃을 피우는 다알리아를 즐길 수는 없다. 내 손으로 직접 기른 토마토를 따 식탁에 올리고, 한 해 동안 잘 키운 콩꼬투리에서 빼낸 콩으로 밥을 짓는 그런 기쁨은 없다.
작은 마당에라도 내 손으로 식물의 씨를 심어봐야 한다. 식물의 연약한 싹이 온 힘을 다 해 무거운 흙을 들어올리고, 한 해 딱 한 번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꽃이 핀 뒤 나비와 벌들이 날아와 어떻게 아름다운 공생을 하는지, 꽃잎을 바짝 말려가면서까지 한 알의 씨앗을 맺기 위해 애쓰는 치열한 식물들의 삶의 현장을 봐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진정한 정원 일의 즐거움이 생긴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