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주변에 겁주는 大國이라면

입력 2012-05-15 18:17


“필리핀을 여행 중인 중국 관광객은 16일까지 모두 필리핀을 떠나라.”

중국인 관광객들은 필리핀에게는 제일 소중한 고객이다. 매년 필리핀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수가 100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해가 된다. 중국 국가여유국(旅遊局)이 지난 13일 필리핀 관광 금지령을 내렸다. 큰손으로 자리잡은 중국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니 필리핀으로선 난감한 일이다.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필리핀산 과일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검역도 강화됐다. 말이 ‘검역 강화’이지 사실상 ‘통관 거부’다. 이들 과일이 제때 통관되지 않으면 상품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다.

이에 따라 필리핀 수출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수출업계 종사자들은 농산물뿐 아니라 전자제품 등 공산품에 대해서도 중국이 압박을 가해 올까 봐 걱정하고 있다. 필리핀산 전자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팔려나가고 있으니 걱정이 오죽할까.

필리핀의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지난 3월 기준 6억4200만 달러로 전체의 14.9%를 차지했다. 15%대를 보이고 있는 미국, 일본과 근소한 차이로 중국이 3위를 달리고 있지만 곧 필리핀 최대의 수출 시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중국이 예상대로 경제 제재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필리핀과 황옌다오(黃巖島, 스카보러 섬) 영유권을 놓고 두 달째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중국으로선 경제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의 무릎을 꿇리는 게 당장은 통쾌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압적인 대국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주변국들이 늘어가는 건 어찌 할 것인가.

중국은 기회만 있으면 국제사회와 함께 ‘조화로운 세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G2(주요 2개국) 체제’는 중국의 외교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패권을 장악할 의도가 없으며 일부 국가 중심의 지배구도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다자주의 시대에 맞춰 다른 나라들과 상호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국들과 갈등이 생길 경우 중국에게 책임을 묻는 데 대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5일자에서 사설 격인 ‘종성(鐘聲)’ 칼럼을 통해 이러한 내심을 잘 드러냈다. 칼럼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나라가 왜 자꾸 의심을 받아야 하는가”라면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중국을 세계 여러 나라의 적으로 돌려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러한 모습은 주변국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남중국해 일대에서 계속되고 있는 분쟁을 한번 보자. 중국은 이곳을 ‘난하이(南海)’라고 부르는 호칭에서 보듯 자국의 내해(內海)라고 주장한다. 그런 만큼 중국 고유의 영해라는 사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남중국해는 자국의 ‘핵심 이익’인 만큼 누구도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이쯤에서 남중국해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이 해역 영유권은 남중국해 거의 모든 바다를 포함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들의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중국은 자신의 굴기가 주변국들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주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때로는 눈앞의 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우격다짐을 앞세우는 힘센 이웃으로 비춰진다. 주변국들이 모두 ‘공동의 적’으로 돌아선 뒤 뒤늦게 손을 내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