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인종전시장

입력 2012-05-15 18:17

자본주의는 어떤 면에서 돈을 가진 사람들의 천국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값이 매겨지는 체제인 만큼 사람의 인격은 돈에 묻혀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산업혁명의 성과물과 식민지에서 얻은 재화를 전시하고 여기에 새로운 상품과 소비, 오락을 더해 대중의 욕망을 재현한 공간이 바로 근대 박람회였으며 요새말로 엑스포다. 상품전시장이지만 예전에는 사람들도 전시됐었다.

일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 룸살롱 황제로 알려진 K씨. 그는 손님들이 찾아오면 통유리로 된 대형 룸에 여종업원을 앉혀놓고 파트너를 고르게 했다. 밖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합석할 여인을 볼 수 있지만 안에서는 남성을 볼 수 없게 한 구조였다. 자본주의에 빠져 타락한 인간의 퇴폐적 심리를 교묘히 상술에 이용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07년 도쿄에서 열린 권업박람회 조선관 옆 수정관에는 우리나라 남녀가 전시된 적이 있다. 그 시대 엽서를 다각도로 분석한 권혁희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2005년·민음사)에 나오는 얘기다. 남자에게는 상투에 망건을 싸매고 큰 삿갓을 씌워 광수포(廣袖袍·소매가 넓은 옷)를 입게 하고, 여자에게는 장군(長裙·긴치마)을 입혀 의자에 걸터앉게 했다.

황헌은 이를 두고 “우리나라 사람을 우롱하는 것으로 꿈틀거리는 동물처럼 박람회에 출품한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아이누족 전시장까지 만들었다. 양복을 입은 일본인 관람객이 아이누족 사이에 앉아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1913년 메이지 기념 척식박람회 인종 전시관에서의 일이다.

미항 여수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 삼성과 LG, 현대 등에서는 첨단 IT기술로 무장한 그래픽과 신기에 가까운 사람의 곡예를 결합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업전시관이라고 해서 그 회사의 제품만 달랑 선전하는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욕망을 드러내긴 하지만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물론 인종전시장은 없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은 많이 찾아온다.

뒤늦게 그림에 뛰어들어 명성을 얻은 고갱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찾았다가 남태평양의 원시적인 모습을 전시한 민속관에 ‘필이 꽂혀’ 그 길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여수엑스포를 한번 찾아가 보자. 혹 고갱처럼 그동안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