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방사선 ‘암 파괴술의 절대지존’… 세계입자방사선치료학회 5월 17∼19일 코엑스서 학술대회

입력 2012-05-14 18:25


수염이 하얀 무림의 고수가 두부 위에 벽돌 한 장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두부를 올려놓는다. 팔을 천천히 움직여 하늘을 향해 커다란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손으로 벼락같이 두부를 내리친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두 동강 난다. 하지만 벽돌 위아래에 있던 두부에는 상처 하나 없다. 중국 무술 중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장법, 철사장(鐵沙掌). 철사장은 적에게 외견상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고 내장만 상하게 하는 무공이다.

무협 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암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무림 고수의 손에서 나오는 강력한 열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핵물리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사선 폭탄, ‘입자방사선’이다. 입자방사선이란 암 조직을 향해 쏘아 암 세포에서만 다량의 방사선을 내도록 해 암 세포의 DNA 사슬을 끊어버리는 양성자와 탄소·네온 등의 중(重·무겁다는 뜻)입자를 가리킨다.

입자방사선 치료 기술의 세계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입자방사선치료학회 학술대회가 ‘입자방사선 치료의 창조적 적용’이란 주제로 17∼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세계입자방사선치료학회는 전 세계 의학물리학자, 방사선종양치료의사, 가속기 관련 과학자 및 공학자 1000여 명이 참여하는 학술 단체다. 그동안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에서만 열리던 이 학회의 학술대회가 아시아권에서 열리기는 2010년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

◇암 파괴술의 절대무공, 입자방사선=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암 세포만 골라 죽이느냐다. 항암제나 방사선은 눈이 달려 있지 않아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 치료의 부작용은 이래서 생긴다.

방사선 치료는 이렇듯 깨지기 쉬운 환자라는 유리병 속에 있는 암이란 이물질을 제거하되, 몸통인 유리병엔 가급적 손상을 가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이다.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법 역시 방사선 치료의 일종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수소의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다. 양성자 빔은 일반 X선보다 10% 정도 세고, 중성자 선(탄소 빔)은 양성자보다 질량과 살상효과 모두 2∼3배 더 크다.

일반 방사선 치료는 X선이나 전자빔을 인체에 쏴 암세포를 파괴한다. 지금까지 환자치료에 많이 사용했던 X선은 체내에 에너지가 흡수되는 범위가 넓어 암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양성자 빔과 탄소 빔은 X선과 달리 체내 목표지점에 도달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내놓고 사라진다. 이는 입자방사선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이다. 에너지가 표적에 집중적으로 발산되는 이 현상을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고 한다.

브래그 피크가 생기는 지점은 빔의 세기와 사용 물질에 따라 다르다.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조관호 박사는 “특히 양성자 빔이나 탄소 빔을 이용하면 마치 철사장을 익힌 무림 고수가 두부 사이의 벽돌을 깨듯 암세포만 정확히 조준해 파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암과 전립선암 치료효과에 탁월한 양성자=양성자 치료는 중요한 세포조직 주변에 암이 발생했으나 외과 수술로 제거하기 힘든 골종양이나 전립선암에 효과가 좋다. 특히 눈 뒤쪽 시신경 근처에 발생하는 안암(眼癌)은 외과수술을 할 경우 안구를 적출해야 하지만, 양성자 치료법을 사용하면 수술 없이 완치가 가능하다. 또 X선 치료를 오래 할 경우 성장저해가 우려되는 유아에게도 탁월한 치료효과가 있다.

하지만 양성자 치료가 모든 암에 만능인 것은 아니다. 간암, 폐암, 유방암, 기타 재발 암은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치료효과가 크게 달라지며, 여러 부위에 전이된 암의 경우에도 기존 X선 치료와 효과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가슴이나 배에 있는 암은 환자가 숨을 쉴 때마다 불규칙하게 움직여 양성자 빔을 정확하게 조준하기 힘들다.

의학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방사선치료기에 ‘호흡추적장치’를 부착해 호흡에 따른 움직임을 암 치료 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조 박사는 “양성자 치료기에도 이 같은 호흡추적장치를 장착, 적응증을 넓히는 연구가 요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성자 치료센터는 현재 전 세계에서 40곳이 가동되고 있다. 국내에선 국립암센터 외에 삼성서울병원 등 2∼3곳이 설치를 추진 중이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500억∼80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치료비가 약 3000만원으로 비싼 것이 흠이다.

◇암 표적 치료엔 세기조절 가능한 중입자=기존 방사선 치료는 처음에는 빛이 세지만 몸속에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져 정작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는 힘을 잃고 비실비실해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전체 에너지의 60∼70%밖에 발산하지 못한다. 암세포 살상 효과가 떨어지고,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주는 이유다.

그러나 중입자 치료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탄소 빔은 피부로부터 최장 30㎝ 깊이 체내 지점에서 최대치의 힘을 발휘하고 바로 소멸된다. 따라서 정상 조직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파괴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암 치료 시 탄소 빔은 초당 10억개 정도의 방사선을 쏘는 속도로 가속된다.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신경환 박사는 “수소 원자의 핵에 얼마만큼의 전기를 가하면, 몸속 몇 ㎝ 지점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며 “이 방사선 폭탄이 터지는 지점은 10분의 1㎜까지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몸속 28㎝에서 방사선 폭탄이 터지게 하려면 탄소 핵 한 개당 4억 전자(e)V를, 몸속 14.5㎝는 2억7000만 전자V를 걸어주는 식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암 치료용으로 중입자 가속기를 가동하고 있는 곳은 일본 두 곳, 독일 한 곳 등 세 곳이지만 연내 10여 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군마대학병원이 새 시설을 준비 중이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과 프랑스 리옹, 이탈리아 밀라노 파비아, 오스트리아 비너 노이스타트 등에도 구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이 시설을 독자 건설 중이다. 관련 기술은 한국원자력의학원 연구진이 개발했다. 한 기당 건설비용은 양성자치료기보다 많아 1000억원 정도다.

입자방사선이란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한 일반 방사선 치료는 에너지가 피부 표면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계속 감소하기 때문에 방사선이 특정 깊이에 위치한 표적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는 효율이 초기 선량 대비 60∼70% 수준으로 떨어지고, 피부와 암세포 사이의 정상세포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된다. 반면 양성자, 중성자 등 입자방사선은 정상세포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로 빠르게 최장 30㎝ 깊이까지 들어가 최대 에너지를 발산, 표적 암세포를 파괴하고(브래그 피크) 급속히 소멸돼 치료 효율이 높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