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에 뚫린 ‘박영준 비밀의 문’
입력 2012-05-14 18:59
현 정부 초기부터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던 ‘박영준 비밀의 문’이 차명전화(대포폰)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파이시티 로비의혹, 포스코 인사개입 의혹 등이 박 전 차관의 대포폰에서 직·간접적으로 실마리가 풀리는 모양새다.
박 전 차관의 감춰졌던 그림자는 민간인 사찰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사찰에 연루된 인사들의 대포폰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2010년 7∼8월 대포폰으로 포스코 계열사인 I사 측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포착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이 전화는 박 전 차관의 비서관 이모씨가 조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차관이 비슷한 시기에 이 전화로 포스코 사장급 인사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 전 차관이 과거 포스코 회장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이어 포스코 경영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박 전 차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의혹도 대포폰에서 단서가 잡혔다. 검찰은 그가 2010년 7월 민간인사찰 1차 수사 당시 같은 대포폰으로 최종석(구속)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사찰자료를 은폐한 사람들과 통화한 기록을 확인했다. 이 대포폰으로 은폐 대책을 논의했을 것이란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박 전 차관의 대포폰이 포착된 이후 검찰 수사도 술술 풀려가고 있다. 검찰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로부터 “박 전 차관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박 차관(국무차장) 보고’라는 문구가 담긴 지원관실 문건도 확보했다. 민간인 사찰자료 삭제·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2010년 7월초 사찰 증거인멸과정에서 서유열 KT사장을 통해 차명폰을 개설해 관련자들과 증거인멸 당시 연락수단으로 사용했다.
최근 파이시티 로비의혹 수사과정에서도 박 전 차관이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전화는 자신의 ‘금고지기’로 의심받은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이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박 전 차관은 이 전화로 지난달 24일 이 회장과 통화했다. 검찰이 박 전 차관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기 전날이다. 이 회장은 박 전 차관과 통화한 다음날인 25일 중국으로 출국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차관이 미리 압수수색 정보를 알고 이 회장을 도피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전 차관은 이 회장이 중국으로 도피한 뒤에도 통화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구속기소된 이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 못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자료삭제를 지시한 점은 인정하지만 이게 증거인멸이 되는지는 사법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