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지는 통합진보당] 당권파, 운동권 습관 왜 못버리나

입력 2012-05-14 19:12

30년 노동운동에 몸바쳐온 진보정당 대표의 머리채를 20대 여대생이 잡고 흔드는 모습, 자기와 다른 주장과 논리에는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맹신, 구호와 폭력, 몸싸움….

12일 밤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열린 경기도 일산 킨텍스는 마치 20여년 전 운동권 대학생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은 풍경이 연출됐다. 수업거부를 주장하며 강의실을 폐쇄하던 모습은 당권파 당원들의 단상 점거로, 시위를 막는다는 이유로 전경을 구타하던 대학생들은 불리한 결정을 내리려 한 공동대표단을 폭행하는 당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이날뿐 아니라 지난 4일과 10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도 ‘언어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당권파 간판인 이정희 전 공동대표는 “이게 무슨 비례대표 경선 부정 진상보고서냐. 폐기하라”고 강변했고, 경기동부연합 소속인 안동섭 운영위원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보고서를 내놓은 사람들이 무슨…. 부실하고 편파적으로 조사한 진상조사위원들이나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동일 IP 다발투표’나 ‘묶음투표’ 같은 부정행위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일 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에 불과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란 특정한 목적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절차에서의 정당성을 의미하는데, 당권파는 정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목표’만을 민주주의로 여기고, 나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진보성향 논객인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 글을 통해 “정권이건 당권이건 과오에 책임 있는 세력은 그 권력을 넘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까지 운동권의 이 같은 행태는 그래도 시민들로부터 일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학생들의 ‘작은’ 폭력보다 정권의 ‘거대하고 조직적인’ 폭력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20년이 넘게 흐른 현재까지도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럼 운동권 중에서도 유독 민족해방(NL)계열에서 ‘폭력 불사’의 사고방식이 팽배한 이유는 뭘까. 민중민주(PD)계열은 분배평등이라는 제1의 목표를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반면 종북성향의 NL계열은 민주주의 절차로는 결코 자신들이 옹호하는 북한식 민족주의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고 여긴다. 비당권파 핵심 관계자는 “NL계열은 어찌 보면 진보를 가장한 북한식 민족주의 분파”라며 “자신들의 정체에 자신이 없으니 이번 사태 같은 폭력에 의존한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진보 정치세력이 보수 세력보다 더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국민들은 이를 진보가 아니라 진보테러리즘으로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