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그들은 왜 애국가를 거부할까

입력 2012-05-14 18:11


지난 2005년, 저작권단체와 프로축구 구단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애국가의 저작권 때문이었다. 음악저작권협회는 “관중들에게 돈을 받는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틀 때는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들려주는 애국가도 돈을 낸다는 논리였다. 구단 측은 “국민의례를 하는 데 왜 돈을 내느냐”고 맞섰다.

논쟁은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애국가는 공공재”라는 주장보다 “안익태 선생의 개인저작물에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결론 나자 네티즌들은 “그러면 별도의 애국가를 만들자”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당황한 쪽은 정부였다. 한 나라에 두 개의 애국가가 말이 되는가. 스페인 마요르카에 사는 롤리타 여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저작권 기증을 이끌어냈다.

작곡가가 친일파라는 핑계

애국가는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저작권을 위임받은 단체는 정당한 사용료를 받아 유가족의 생활비에 보탰다. 국민들 또한 모두가 사랑하는 애국가를 자유롭게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작곡가의 미망인이 “애국가가 한국 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불리기를 소망하며 고인이 사랑했던 조국에 이 곡을 기증합니다”라며 사유재산을 흔쾌히 내놓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예외가 있다. 바로 요즘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는 통합진보당이다. 그들은 창당대회에서 태극기에 경례를 하되, 애국가는 부르지 않았다. 이전의 민노당은 국가(國歌)도, 국기(國旗)도 싫어했으나 통합진보당으로 변신하면서 태극기에 대한 예는 갖추고 있다. 내키지 않지만 정권을 잡는 데 필요하다니 억지로 하는 것이다.

이들은 왜 애국가를 거부하는 것일까. 겉으로 내세우는 것이 작곡가의 친일이다. 안익태 선생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고, 일부 행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지은 애국가가 친일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힘을 모았다. 작곡자는 안익태지만 대한민국의 국가로 만든 사람은 고난 속에서 나라를 되찾고, 세우고, 키운 국민이었던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애국가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다. 친미파 이승만이 친일파들과 결탁해 세운 단독정부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지금까지 역사를 업신여긴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이런 역사관에 매몰되면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이 불편해 진다.

그러나 통진당의 핵심에 국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이정희는 국립서울대를 나와 국가자격시험인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그런 이력을 바탕으로 국회의원과 정당대표가 됐다. 유시민도 서울대를 나와 공영방송 MBC ‘100분 토론’에서 지명도를 얻어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다. 그가 최근 애국가 문제를 제기해 다소 의외였지만 한때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말했다.

국가는 싫은데 정치는 좋다?

유권자들은 이런 통진당의 정체성을 알고도 200만표나 던진 것일까. 빨치산이나 지하당도 아닌, 국민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당이 국가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부인하는 일이 가능한가. 총선에 참여해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이 나라의 상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건국 60년이 지나도록 애국가 타령을 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국가대항 스포츠대회에서 우승해 국기가 걸리고 국가가 나올 때 가슴 뭉클하지 않으면 그 나라 국민이 아니다. 이들은 김연아의 금메달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완전히 기분을 잡쳐버렸다”고 말한다. 정말 같은 국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