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말복]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입력 2012-05-14 18:10
“등급으로 나누어 줄 세우는 방식은 옆길 혹은 다른 길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한다”
지난 겨울 막바지에 중학생들이 특정 브랜드의 점퍼를 집단적으로 주로 입으면서 가격대에 따라 대장에서 차별적 계급을 나눠 붙이는가 하면 비싼 것을 강제로 빼앗는 일까지 생겨 큰 사건으로 다루어진 적이 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10년 전 내가 아들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지금은 대학생인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파트 단지나 엘리베이터에서 등판이나 어깨에 로고가 붙은 파카를 유난히 많이 봤다. 하지만 학부모 정보망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게 학교에서 교복처럼 정한 파카 아니면 가격이 저렴한 옷 정도로 생각했다.
남들이 너무 많이 그 파카를 입는다는 이유도 일부 있었지만 나는 순전히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색깔과 모양의 파카를 아들에게 입혔다. 그럼으로써 아들에게 그들의 리그의 벽에 구멍을 뚫는 일을 시켰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수직적인 외골수 사고방식과 집단 동류의식이다. 이들의 생각이 수직적인 줄 세우기와 집단성이라는 한국 사회가 지니는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9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줄 세우는 학교제도에서 수직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배운 것이다.
학생들을 시험성적에 따라 등급별로 분류하는 방식은 정확하거나 정의롭지도 않고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무시하는 제도다. 학생들을 상대적인 우월로 줄 세워놓으면 아이들은 자기보다 아래 등급에서 깔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자기가 높은 등급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급우들을 모두 경쟁상대로 생각하게 된다. 동일 등급 안에서는 모두가 몰개성적인 동질성이나 동류의식을 은근히 강요하는 패거리의식과 무언의 폭력성도 있다.
아울러 모두 제일 위의 숫자 1에만 시선이 꽂혀 옆 혹은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평균 1등급이 갈 수 있는 학교 혹은 전국 상위 10%에 들어야 가는 학교 등의 사고경향은 상위 10%만 가는 술집, 상위 1%가 가는 레스토랑 등의 사고방식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는 심각한 병이다. 어쭙잖은 기준으로 99%의 좌절과 열등감을 부추기는 일은 아닌지.
최근의 문화, 예술, 테크놀로지, 그리고 학문에서 요구되는 사고 경향은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교류와 융합이다.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만나 서로를 닮아가는 전유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인접예술들이 경계를 허물고 융합되어 새로운 혼종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기술들이 하나의 미디어에서 융합되는 미디어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공동으로 융·복합적 연구를 하는 것이 대세다.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횡적인 연결과 접합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전적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이질적인 다른 분야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수평적인 교류가 수월한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직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수평적인 사고가 힘들다. 사회전반에 걸쳐 각 활동 조직마다 촘촘하게 수직적인 계파들이 깔려 있어 그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예술계만 하더라도 여러 장르 사이의 벽이 단단하고 각 장르 속에서도 스타일과 유파간의 장벽은 강철 같다. 한 집단의 학생이 옆으로 한눈팔았다가는 큰일 난다. 이른바 찍히는 것이다.
한창 사춘기 때 자신의 자아와 개성을 찾기 위해 발버둥쳐도 모자랄 그 시간에 우리 아이들이 똑같은 패거리집단 속에 숨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모든 일에 한 가지 기준이 아니라 나와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이질적이고 개성적인 척도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다.
김말복(이화여대 교수·무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