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갈라파고스 신드롬
입력 2012-05-14 18:07
최대 시속 400㎞로 난다는 군함새, 파란색 발을 가진 부비새, 흰색과 검은 갈색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 알바트로스 그리고 이구아나 등 좀처럼 보기 힘든 생물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어 꿈의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 있다. 남미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965㎞쯤 떨어진 갈라파고스제도. 19개의 섬으로 이뤄진 이곳은 1535년 발견될 당시 거북이들의 서식처였다. 스페인어로 거북이를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정식 명칭인 콜론제도 대신 갈라파고스제도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갈라파고스와 육지와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외부종(種)이 유입됐고, 이에 따라 지금도 거북이를 비롯해 고유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서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란 말이 생겼다. 갈라파고스 현상,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자국시장에만 안주하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된 일본 IT산업을 빗대 잘라파고스(Jalapagos: Japan과 Galapagos 합성어)라고 부른 것이 시발이었다. 이후 미국의 자동차 산업 등 경제 분야에서 자주 사용됐다.
이 용어가 최근에는 정치 쪽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당시 한나라당이 갈라파고스 거북이에 종종 비유됐다. 법조인, 기업인, 고위 공직자 등 소수 특권층이 다수인 정당이어서 그런지 일반 국민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돼버려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생명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었다.
요즘 우리 정치판에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세력이 다시 등장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다.
통진당 지분의 55%를 갖고 있는 이들은 수적 우세를 과신한 탓인지,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대리투표, 이중투표 등 헌정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잘못된 조사”라고 억지를 쓰곤 폭력을 휘둘렀다. 비당권파를 겨냥해 ‘세작(細作)질을 일삼는 세력’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중앙위가 어제 전자투표를 실시해 경선에서 뽑힌 비례대표 14명의 총사퇴를 결의했으나 “원천무효”라고 주장한다. 오로지 자기들만 선(善)이다. 안하무인, 적반하장이 너무 심하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4·11 총선에서 승리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국민 속으로 파고든 결과다. 통진당 당권파도 재기할 수 있을까. 이미 그른 듯하다. 이제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사라져줬으면 하는 게 적지 않은 국민들 심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