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운치 있는 사람, 아름다운 물건
입력 2012-05-14 18:12
5월, 신록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고운 봄꽃은 어느새 대부분 사라져 가고, 그 자리엔 차분하고 은근하며 수려한 매력을 지닌 다채로운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명나라 말기에 뛰어난 산수유기(山水遊記)를 남긴 왕사임(王思任)은 노을과 신록 등 각종 색채를 뿜어내는 대자연을 ‘거대한 염료 관청(大染局)’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저 자연의 다채로움 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인터넷과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과 글들이 명멸한다. ‘그 내용은 다르지만 그 기량은 같다(同工異曲)’는 한유(韓愈)의 말 그대로다. 많은 사람과 물건이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나와 내가 만든 물건 역시 남들에게 선택된다.
장조(張潮)는 명말 청초의 문인으로 일상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매우 시적이고 함축적인 산문을 남겼다. ‘채근담(菜根譚)’이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 처세의 지혜를 주로 다루었다면, ‘유몽영(幽夢影)’은 생활의 발견을 통한 운치 있는 인생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다.
시는 인간적 진실과 절제를 바탕으로 해서 생동하는 사물, 풍부한 정서, 정신적 충만, 이런 것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운치를 담아낸다. 그림 역시 자연과 인간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미감을 구현한다. 문인화(文人畵)처럼 고매한 인품이나 정신적 깊이가 우러나는 작품도 있다.
시로 쓰고 싶은 사람은, 바로 진실 되고 생기 있고 정감 있는 사람일 것이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물건은, 아름답고 운치 있는 것일 터이다. 장조의 말은 내가 그러한 사람을 친구로 삼고 그러한 물건을 구해야 한다는 뜻도 되지만,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고 그러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내 마음을 미루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들 역시 좋아하는 줄 알게 된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