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 회장 ‘밀항 직전 203억 인출’ 책임론 대두… 우리銀·금감원 업무태만 지적

입력 2012-05-13 21:56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 밀항 시도 직전 203억원을 은행에서 인출해 은닉할 수 있었던 것은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의 방조와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의 업무태만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13일 금감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김 회장은 밀항 시도 전날인 지난 2일 예치금을 맡겨놓은 우리은행 지점에 전화를 걸어 “뱅크런에 대비하고 유상증자에 사용해야 한다”면서 예치금 전액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3일 저축은행 예치금 관리를 담당하는 해당 부서 직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리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김 회장은 직접 우리은행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뒤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 구비서류를 챙겨 비밀번호를 새로 바꾸고 다른 직원들을 시켜 영업종료 시각이 지난 오후 5시40분쯤 203억원을 모두 인출해갔다.

당시 금융당국의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 발표가 임박했고, 평소 거래하던 예치금 담당 직원이 방문하지 않은 채 김 회장이 비밀번호까지 바꾸면서 긴급하게 거액을 찾아갔지만 우리은행은 예치금을 그대로 인출해줬다. 이후 감독당국 등에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법적으로 지급제한 조치가 없었고 통장과 인감 등 필요서류를 모두 구비했는데 인출을 거부할 수는 없다”면서 “감독당국에서 특별히 거액인출에 대해 보고하라는 얘기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미래저축은행의 영업정지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금감원의 업무태만은 더 문제다. 지난해 1, 2차 저축은행 퇴출 당시에도 대주주의 자금은닉 등이 문제가 됐지만 금감원은 어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더구나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면서 김 회장의 불법 사실을 확인, 검찰에 통보했고 미래저축은행에는 감독관까지 파견했다. 하지만 이 파견 감독관은 3일 영업종료 시각 이후 자금인출을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야 확인했다. 김 회장이 해양경찰 당국에 체포되지 않았다면 밀항 이후에나 발견해 속수무책이었다는 결론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파견 감독관은 어떤 법적 권한도 갖고 있지 않아 저축은행 측의 자금 입출금에 대해 문제 삼을 수도 없다”며 파견감독관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선 필요성만 언급했다.

오종석 기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