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폭력 사태] 당대표 집단폭행… “진보는 죽었다”
입력 2012-05-13 21:50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정당 대표가 당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에 정권이나 반대 정파가 창당 등을 방해하기 위해 전당대회에서 용역 폭력을 쓴 적은 있었지만, 합법적으로 등록된 당원에 의해 같은 당 지도부가 얻어맞은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상 ‘린치’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통합진보당 비당권파인 유시민 공동대표와 조준호 공동대표는 12일 밤 당 중앙위원회의가 열린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당권파 당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유 공동대표는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갔고 조 공동대표는 머리채를 잡히고 목이 졸렸다. 폭행은 수차례 반복됐고 당권파와 이를 막으려던 비당권파 당원 간에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했다.
당권파 당원들이 이처럼 흥분한 것은 비당권파 심상정 공동대표가 자신들이 반대하는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는 당권파 측의 소란과 의사 진행방해로 7시간 넘게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다.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던 심 공동대표가 안건을 처리하기 시작하자 당권파 당원들이 단상으로 난입한 것이다. 이후 11시30분 심 공동대표가 무기한 정회를 선포할 때까지 무려 2시간 가까이 통합진보당의 ‘민낯’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특히 이번 일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정당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던지는 충격이 간단치 않다. 폭력 사태는 4·11 비례대표 경선 부정 수습책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벌어졌다. 당권파 측은 비리를 폭력으로 덮어버리려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아울러 1987년 폭력배들이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했던 이른바 ‘용팔이 사건’ 이후 최악의 정당 폭력사태로 기록됐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과 당내 민주적 절차가 붕괴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이번 일로 진보정치는 10년은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당권파 당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폭력도 쓸 수 있다는 전형적 독선을 드러냈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 ‘집단의식’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 당권파 당원들을 정상적 상태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이들은 ‘네 탓’ 공방에 돌입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오늘로 대한민국 진보는 죽었다”면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한 줌의 무리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진 200만이 넘는 유권자의 뜻을 사정없이 짓밟는 민주주의 파괴의 현장을 봤다”고 비판했다.
한민수 기자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