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당신, 사랑이 뭔지 알아요?”

입력 2012-05-13 18:07


오랜 세월 전문적으로 기독교 가정 사역을 해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서 매진했다고 한다. 신혼 초, 그는 믿음의 친구들을 가정으로 불러 모아 몇 시간이고 기도모임을 가졌다는 것이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생각하면 그는 마음이 뜨거워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문제는 모임이 다 끝난 뒤였다. 모임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느라 그의 아내는 매번 파김치가 되곤 했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남편은 아내의 노고를 몰라주었고, 아내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피곤한 아내와 무심한 남편 사이에는 종종 다툼이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 사랑이 뭔지 알아요?” 느닷없는 아내의 질문 앞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어서 던진 말, “‘민족복음화’ 하는 것이 아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 알아요?” 가까이 있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아내의 말이다. 그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옳은 말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코 자신의 신앙에는 문제가 있었다. 가까이 있는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가정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정 사역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의 신앙은 결단코 모호하지 않다.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4:20)고 했다. 얼마나 실제적인가? “누가 이 세상 제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3:17) 소름끼칠 정도로 구체적이다.

사도요한이 이런 말씀을 했던 것은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의 무서운 영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주의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구체적인 실천과 삶의 현장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영지주의 이단이 교회에 끼친 폐해는 참으로 심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지주의적인 독버섯은 시대를 뛰어넘어서, 여전히 우리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복음이 약해진 교회와 성도들 속에서 비슷한 종류의 독버섯은 언제든지 자랄 수 있다. 혹자가 말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통치하시고, 가정에서는 공자가 통치하고 있다고! 무서운 말이다.

가정의 달이다. 세계선교와 민족복음화보다 더 어려운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세상은 그것을 보고 싶어 한다. “당신, 사랑이 뭔지 알아요?” 이 말이 문득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