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체 위기] ‘창당 뿌리’ 민노총마저 외면… 통합진보, 껍데기만 남나
입력 2012-05-11 18:55
‘진보정치’ 모태 세력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11일 ‘재창당 수준의 쇄신’이 안 될 경우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카드를 꺼냄에 따라 통합진보당이 2000년 창당(당시 민주노동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최대 당원수를 보유한 ‘창당의 뿌리’를 잃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만약 12일 열릴 중앙위원회에서도 당권파가 지도부 및 비례대표 경선 공천자 전원사퇴 등 쇄신책을 가로막을 경우 통합진보당은 그야말로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핵심관계자는 중앙집행위 결정에 대해 “정파가 중심이 된,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통합진보당 중심세력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진보정치가 어렵다”면서 “도덕성과 민주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진보 정파들을 흡수해 정파가 아닌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재창당 수준’이라는 의미가 통합진보당의 해체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내 각급 단체들은 이번 사태 초기부터 반(反)당권파 움직임을 드러내왔다. 전날에는 ‘올바른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가 성명을 내고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단호한 쇄신을 요구하는 데 그치거나 ‘당과의 거리두기’ 또는 ‘노동지분 확대’ 수준에서 이번 사태를 안일하게 취급하면 우리 역시 패권주의에 휩싸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내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도 “당권파가 무릎 꿇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라”는 성명을 내놨다. 금속노조는 경선부정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조준호 공동대표가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단체다. 공공운수연맹 등 다른 대규모 산별 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내부에선 지지 철회를 넘어 집단탈당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흘러나온다. 만약 민주노총의 탈당이 가시화될 경우 통합진보당은 조직력 급전직하와 함께 당비 납부의 최대 자금줄을 잃게 된다.
아울러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전철협), 서민의 힘, 주거와 생존을 위한 사회연합 등 진보 진영 5개 시민단체도 통합진보당 지지를 철회했다. 민주노총과 진보 시민단체들이 속속 당권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이번 기회에 종북 성향의 당권파 행태를 뿌리 뽑지 않으면 진보세력 전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유시민 공동대표의 국민참여당계와 심상정 공동대표, 노회찬 대변인 중심의 진보신당 탈당파 등 비당권파가 자신 있게 당 쇄신안을 밀어붙이는 것도 바로 민주노총 세력 등의 든든한 지원에서 기인한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는 당권파를 노동계층의 연대세력으로 여겼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며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참여당계의 정치 감각이 민주노총이 바라는 진보정치 대중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총선 이전까지 참여당계와 진보신당 탈당파가 환영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