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입력 2012-05-11 18:04


누가복음 19장 41∼42절

인간에게 고귀한 액체가 있다면 그것은 땀과 눈물과 피입니다. 모든 인간의 위대한 인격의 실현은 거의가 이 고귀한 액체가 뿌려진 결실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결코 값진 성공을 이룰 수 없으며 눈물 없이는 숭고한 정신이나 진리가 실현된 일이 없으며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새 역사가 창조된 일이 없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성공을 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의로 얻은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보람은 나의 노력의 대가인 땀흘림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물일 것입니다. 눈물은 양심의 결정이요 눈물은 사랑의 시발입니다. 가슴속의 사랑의 샘이 마르면 눈물도 없어집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사람에게 비극이 있다면 눈물과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왜 우셨을까요? 스펄전 목사는 눈물 없이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조차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늘 세상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마저 왜 이토록 눈물이 말라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웃으셨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세 번씩이나 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은 우셨습니다. 첫째, 영혼 구원과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도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버린 쓰라린 눈물,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단장의 눈물, 부모를 잃은 고아의 슬픈 눈물, 배고파서 흘린 눈물….

그다음 또 한가지. 건강을 잃고 병상에서 신음하는 아픔의 눈물, 말 못할 억울한 일을 당하고 호소할 길 없는 사연 속에서 눈물로 몸부림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이런 현실을 보고 웃으실까요, 우실까요. 주님 이제는 영혼 구원의 눈물과 사랑의 눈물로 한 방울 두 방울 그들을 위해 흘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눈물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비극을 바라보는 예언자적인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의 용도를 보면 요한복음 11장 34∼35절 말씀에 “이르시되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 눈물은 나사로의 우정어린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 이 역사에 예수그리스도의 눈물이 조국 땅을 적신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봅시다. 그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범죄하므로 앞으로 미치게 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눈물이 오늘 이 민족 앞에, 우리에게 절실하게 예수님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열들의 기도가 있기에 다행히 이 민족 이 나라가 살기좋은 나라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처럼 다니엘처럼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이 나라 민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귀한 깨달음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정홍채 목사 (송탄 평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