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장학재단 이상춘 대표

입력 2012-05-11 21:04


<미션라이프>1971년 경북 김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코 앞에 둔 15세의 시골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고 올라가게 해달라는 소년의 간청에 아버지는 “어차피 학비가 없어 못할 공부인데 붙으면 더 괴롭다”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주일학교부터 신앙생활을 한 소년은 버스 안에서 내내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나 부모님이 돈 때문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가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면 저처럼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이 없도록 돕겠습니다.”

지난 2008년, 사재 105억원을 출연,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한 ㈜에스씨엘 이상춘(56·파주 한소망교회 안수집사)대표이사의 이야기다. 그 사이 출연금을 더 넣어 2012년 현재 111억원을 보유한 상록수장학재단은 올해에만 350명의 학생에게 4억 여원을 지급했다.

서울 먼 친척 기계 스프링공장 ‘시다’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일했다. 21세에 독립, 용산에 공장을 차렸다.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움의 한을 풀었다. 이 때 배움도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다. 승승장구 하던 회사는 1980년 오일쇼크의 첫 위기를 만난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신용으로 부도는 겨우 막았다. 다시 잘되던 회사가 1990년 전국적인 노사분규로 2차 위기를 만난다. 이번에는 이어지는 공장들의 부도여파로 도저히 어려움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채무업자에 시달리다 이 대표는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아내에 미안하다는 유서를 쓰는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어요. 그런데 바로 이 때 성령의 강한 은혜가 임하며 그동안 돈 번다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던 것을 절절히 회개하게 됐습니다. 주님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고, 은행지점장이 부도를 막아주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생한 회사는 내실경영으로 본궤도를 달렸다. 외환위기 때 경쟁업체를 인수, 회사 규모가 성큼 커졌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에스씨엘은 부천에 본사를 두고 화성과 당진, 중국 텐진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굴지의 회사로 거듭났다.

“저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것을요. 제가 영적으로 바로 서자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좋은 하나님과 한 서원을 제가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이 대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년 전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회사가 더 큰 다음에 하라는 주위의 권유가 많았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의 장학사업은 분명한 철학이 있다. 선발학생들에게 학비 외에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주고 년 두 차례 수련회를 열어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강연과 토론의 기회를 만든다. 대학생과 멘토를 맺게 해 진학이나 진로상담을 하도록 관계를 형성시켜 준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랑과 나눔, 헌신과 봉사, 보람과 기쁨의 릴레이가 이어지도록 돕고 있다.

이후 이 대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만 찾아서 하고 있다. 김천에 청소년전문 상록수교회를 설립했고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 난민수용소에 학교 두 곳을 지어주었다. 또 카자흐스탄에 병원을 지었고 중국 심양에도 교회 2곳을 건축해 봉헌했다. 병원과 학교, 교회는 앞으로 필요한 곳마다 지을 수 있을 때까지 짓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땅을 매입, 기독교를 테마로 한 ‘성지순례길’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제주 조수교회 김정기 목사의 도움이 컸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너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분명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뤄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의 삶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돌이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저 감사하다는 그는 “정상에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고 하산을 잘 해 출발점에 다시 잘 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눔으로 시작한 나의 하산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어 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부천=

김무정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