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동굴에서 나와야 희망 있다

입력 2012-05-10 18:39


대선이 있는 올해는 정초부터 정치이야기로 시작했다. 아마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는 연말까지도 이 얘기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우리가 한때 잇속 차리기에 밝은 일본 사람들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얕잡아 불렀듯 그들도 우리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낮춰 부른다고 한다.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아직 선거 후일담으로 뜨겁다. 정치나 권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지나친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요즘 단연 최고의 화제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 비화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집단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처신하다 같은 진영 인사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18대 국회보다 외연을 엄청나게 넓힌 통진당으로선 잔치를 벌여도 시원치 않을 순간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조직내부 논리론 설득 못해

모든 원인은 주사파로 불리는 민족해방(NL)계열 당원들의 외고집에서 비롯됐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그동안 꾸준히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온 NL의 대승리다. 선거 역사상 이렇게 많은 지지를 얻은 적이 없다. 제3의 정당으로 절대 강자가 없는 여야의 틈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을 뿐 아니라 10.3% 정당지지율로 대선레이스에서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 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약진하고도 내홍을 겪고 있는 통진당의 비극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와 너무나 닮았다. 플라톤은 커다란 동굴 속에 살고 있는 몇 사람의 죄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발과 목에 사슬이 묶여 단지 전방에 존재하는 것 밖에 볼 수 없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죄수들이란 욕심에 절어 동굴 밖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목을 매는 사람을 일컫는다.

통진당만 그런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만간 열릴 당 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 후보로 나선 이들이 한둘을 제외하고는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 승리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박 위원장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이 이겼다. 정책 전문가라고 하지만 당내의 평가일 뿐이다.

민주통합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정인사끼리 사전 짝짓기를 해 이런저런 비판을 받자 말을 비틀고 바꿨다. 그렇지만 원내대표에는 짝짓기한 인사가 당선됐다. 이런 추세라면 당 대표도 그 사람과 사전에 담합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정치를 희화화시키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처신이다. 당당하게 경쟁하는 대범함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당 내부 논리로 무장한 정치공학적인 잔꾀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주요 정당은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하다. 선거 때에는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해놓고는 그 뒤에 행동은 정반대다. 부정경선으로 뽑힌 비례대표 당선자를 누가 인정하겠으며, 사전담합해 당선된 원내대표가 떳떳할 수 있을까.

미래지향적 정책 추진해야

국민의 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당은 대선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언어를 선점해야 한다. 진보지식인들이 이미 내년을 2013체제의 첫해라고 지칭하면서 분단극복이라는 담론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야권이 연대해 대선에서 승리해 1987년에 틀을 갖춘 지금의 체제를 다시 정비하자는 계획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동굴 밖으로 나와 밝은 태양을 보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조직 내부 논리에 얽매여 욕심을 부리다가는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살길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