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지붕까지 ‘옹기’ 모두가 예술작품…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입력 2012-05-09 19:10


“독 말리기, 말리기라기보다도 바람 쐬기다. 햇볕도 있어야 하지만 바람이 있어야 한다. 안개 같은 것이 낀 날은 좋지 못하다. 안개가 걷히며 바람 한 점 없이 해가 갑자기 쨍쨍 내리쬐면 그야말로 걷잡을 새 없이 독들이 세로 가로 터져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좀 치는 게 독 말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황순원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 중)

마을 앞으로 부산 해운대역을 출발한 동해남부선 기차가 무시로 기적을 울리는 울산 울주군 온양읍의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 옹기마을이다. 몇 해 전만 해도 깨진 옹기 파편이 어지럽던 마을은 2010년 옹기엑스포가 열리면서 깨끗하게 단장돼 오히려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

한적하던 산골마을이 옹기마을로 자리 잡은 것은 1957년. 경북 영덕에서 옹기를 만들던 고(故) 허덕만씨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부산 피란길에 이곳의 따뜻한 기온과 풍부한 질점토, 마을의 완만한 구릉 등이 가마를 만들기에 적격이라고 판단해 눌러 앉으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됐다.

여기에 6·25전쟁 이후 증가한 옹기 수요로 전국에서 옹기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960∼70년대에는 옹기 장인과 도공이 350여 명으로 늘었다. 부산과 울산 등 대도시가 가까운 것도 판로에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값싸고 튼튼한 플라스틱 용기가 각광을 받고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외고산 옹기마을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8명의 옹기장을 비롯해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면서 맥을 이어오던 외고산 옹기마을은 웰빙 바람을 타고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옹기를 생산해오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에 옹기보존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은 옹기축제와 옹기엑스포가 열리면서 이제는 옹기 체험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옛날에는 지게에 크고 작은 옹기 대여섯 개를 새끼줄로 묶어 고정한 채 이 마을 저 마을로 팔러 다녔어요. 돈을 받고 팔기도 했지만 주로 옹기와 곡식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을 했지요.”

지게에 옹기를 지고 그 옛날 도붓장수하던 시절을 재현해 보인 장성우(64) 옹기장은 17세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옹기 굽는 기술을 배우면서 틈틈이 인근 마을로 옹기를 팔러 다녔다. 부인과 함께 삼국시대 옛 토기와 현대적 생활토기를 만들고 있는 장 옹기장은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색깔을 내는 무유옹기의 장인.

외고산 옹기마을은 담장에서 지붕까지 모두 옹기로 멋을 내고 있다. 토담은 돌 대신 깨진 옹기 파편을 박아 넣었고, 초가지붕에는 호박 대신 옹기 뚜껑이 올라가 있다. 옹기로 만든 가로등과 옹기 파편을 쌓아놓은 옹기무덤도 이곳에서는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다.

주말마다 가족단위 체험객들로 붐비는 옹기마을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국내외 옹기를 전시한 옹기문화관으로, 기네스에 등록된 세계 최대 옹기도 전시돼 있다. 높이 2.2m, 둘레 5.2m, 무게가 172㎏이나 되는 옹기는 5전6기의 작품. 옹기아카데미관을 비롯해 12개의 가마를 운영하는 옹기 공방에서는 옹기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한편 울산옹기축제추진위원회는 25일부터 5일 동안 외고산 옹기마을 일원에서 ‘2012 울산옹기축제’를 개최한다. ‘자연이 꿈꾸는 세상 웅기누리’라는 주제로 옹기 만들기 대회, 장인들의 옹기 제작 시연, 장인과 함께하는 옹기 만들기, 옹기에 풀어놓은 미꾸라지 잡기 등이 진행된다.

축제기간 중에는 나만의 옹기 만들기, 가마소성 체험, 옹기난타 체험, 옹기다례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추진위 김용대 사무국장은 “옹기축제 기간 옹기를 주제로 6개 분야 50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자녀와 함께 방문하면 잊혀져 가는 전통 생활문화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울산고속도로 청량IC에서 외고산 옹기마을까지는 자동차로 10분 거리. 울산에서 옹기마을까지 수시로 시내버스도 다닌다. 동해남부선 남창역에서 옹기마을까지는 걸어서 15분. 마을에는 칼국수와 잔치국수가 맛있는 음식점과 추어탕 전문 음식점이 있다. 인근에 간절곶 등대와 진하해수욕장도 있다.

울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