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첫 高卒공채 100명 늘려 700명 뽑은 까닭은… 실력에 놀라고, 인생史에 울고

입력 2012-05-09 18:52

올해 처음 실시된 삼성그룹 고졸 공채에 지원해 9일 합격한 김모(18)양은 합격 통보를 받은 순간 그동안의 억눌렀던 감정이 북받쳤다.

엄마는 가출하고 어부인 아버지는 주로 바다에서 생활해 투병 중인 할아버지를 모시며 가장 역할을 해왔다.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힘든 상황에서도 김양은 꿈을 잃지 않았다. 삼성카드 사무직에 응시한 김양은 면접 직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상(喪) 중에도 면접에 참석해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삼성화재 사무직에 응시해 합격한 여모(28·여)씨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수업료가 없어 고교 2학년 때 중퇴해야 했다. 여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학 등록금은 요원했다. 결국 여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번 삼성 고졸 공채에 도전해 합격했다.

대학 진학 대신 삼성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700명 고졸 합격자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나선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학 간판 대신 현장실무를 빨리 익혀 꿈을 이루려는 실속파들도 많다.

인문계 고교에 재학 중인 김모(18)양은 학업성적이 상위 13%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론 공부를 하는 대신 현장에서 실무를 통해 업무 능력을 키우고 싶은 생각에 삼성SDS 사무직에 지원해 합격했다. 김양은 삼성의 회계분야 여성리더가 되는 게 꿈이다.

농촌에서 조경 관련 일에 종사하는 아버지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식물과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모(18)군 역시 삼성에버랜드 조경전문직에 도전해 조경분야 전문가로 성장하겠다는 어렸을 적 꿈을 이뤘다. 이군은 고교 진학시에도 아버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조경학과에 진학했다.

삼성은 올해 고졸 공채로 600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지만 소외 계층과 어려운 여건의 학생들에게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100명을 늘려 700명을 뽑았다. 이번 고졸 공채에는 2만여명이 지원해 경쟁률 29대 1을 기록했다.

합격자 출신학교를 보면 상고 420명, 공고 220명 순이며 마이스터고 출신 30명을 포함해 전문계 고교에서 670명이 선발됐다. 인문계 고교 출신도 30명이 합격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를 제외한 지방 고교 출신이 360명으로 수도권 고교 출신(340명)보다 다소 많았다. 직군별로는 사무직 410명, 소프트웨어직 150명, 엔지니어직 140명 등이다.

특히 이번에 처음 선발한 소프트웨어(SW) 직군의 경우 지원자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해 주어진 과제의 알고리즘을 구현해보라 했는데 20%가량은 실전 능력이 뛰어나 면접관들이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원기찬 인사팀장(부사장)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면접 과정을 거쳤는데 응시자들의 전반적 수준이 초대졸 수준이었으며 20%가량은 대졸자보다 더 능력이 뛰어났다”며 “이번 고졸 공채를 통해 학력을 타파하고 능력 중심의 사회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