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3차 퇴출 이후] “저축은행 이름만 아니었어도…” 은행도 아닌 것이 은행 행세
입력 2012-05-09 21:53
저축은행이 원래 이름인 상호신용금고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위원회는 “현 단계에서 상호저축은행 명칭을 상호신용금고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단계’라는 말을 곱씹어볼 때 되레 ‘시간을 두고’ 명칭을 변경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저축은행 부실의 근본 원인이 작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어 금융위로서도 이 문제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지난 10년 동안 저축은행은 은행도 아닌 것이 은행으로 불리면서 경제주체들을 현혹했다. 예금을 끌어 모으고 위험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고위험·고수익 대출에 뛰어들고 대주주의 정실 대출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 결과는 부실이었으며 지난 17개월 새 저축은행 20곳이 영업정지 조치를 당했다.
저축은행의 전신은 상호신용금고다. 2001년 3월 금융당국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 2002년 3월 상호신용금고를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호신용금고의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신용금고가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이미지를 새롭게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상호저축은행의 여·수신액은 외환위기 이후 감소일로였다. 명칭변경이 실시된 2002년 상호저축은행의 여·수신은 2000년보다 각각 22.3%, 19.5% 급증했다. 명칭 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이후 불거진 상호저축은행의 부실에 비하면 겉만 번지르르한 변신에 불과했다.
◇비은행 저축은행의 모순=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당국은 2010년 3월 상호저축은행법을 개정해 상호저축은행 명칭에서 ‘상호’를 떼어내도 무방한 것으로 정함으로써 상호저축은행에 또다시 날개를 달아주었다. 개정 상호저축은행법 제9조 1항은 “상호저축은행은 그 명칭 중에 ‘상호저축은행’ 또는 ‘저축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다.
그 이전에도 상호저축은행이란 명칭보다 저축은행이란 이름을 더 선호했던 업계로서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명칭 변경과 더불어 저축은행의 예금에 대해서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하는 제도는 저축은행이 일반 시중은행처럼 행세하는 데 결정적인 지위를 안겨줬다.
일반은행을 제1은행권으로 분류할 때 저축은행은 제2금융권, 즉 비은행금융기관에 속한다. 은행이 아닌 은행이라는 뜻의 ‘비은행 저축은행’은 형용모순의 극치일 뿐 아니라 저축은행 문제의 근원이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직후 금융당국이 상호신용금고의 회생을 위해 명칭변경과 같은 이미지 개선에 치중하기보다 서민·중소기업을 위한 상호신용금고의 설립취지에 맞도록 법·제도적 수익기반 형성에 힘을 쏟았어야 했다고 분석한다.
참여연대는 “금융당국이 2001년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명칭으로 변경하도록 한 것은 향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정책 실패의 시작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용래 기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