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사망통보 한 장으로‘통영의 딸’ 못 덮는다

입력 2012-05-09 18:32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온 ‘통영의 딸’ 신숙자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고 북한이 유엔에 통보했다. 유엔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이 북한에 전달한 질의서에 대한 공식 답변 형식이다. 북한이 이처럼 납북자 등의 생사 확인 요청에 명확히 응답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보통은 아예 대꾸하지 않거나 ‘연락 두절’ 같이 애매한 표현을 써왔다. 실제로 2008년 조선적십자사는 ‘월북자 현황’이라는 문건에서 신씨를 ‘연락 두절’로 분류했다.

북한이 전례 없이 신씨의 생사를 공식 확인해준 이유는 뻔하다. 그것으로 이 문제를 덮어버리겠다는 의도다. 신씨와 두 딸을 북한으로부터 구출해내려는 남편 오길남씨의 절절한 호소와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 등 북한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유엔까지 나서는 등 신씨 문제가 국제이슈화하자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술책이다.

하지만 신씨가 언제, 어디서,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망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사망 통보 한장으로 신씨 문제를 결코 덮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의 생존 여부가 더 큰 관심사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신씨가 사망했다면 북한은 구체적인 경위와 증거를 밝히고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유골이라도 남편 오씨에게 돌려보내야 옳다.

북한은 답변서에서 신씨를 이혼도 하지 않은 오씨의 ‘전처’로 표기했다. 또 오씨를 ‘가족을 버리고 두 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냉혈한으로 묘사하면서 두 딸이 그를 ‘아버지로 여기지도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오씨와 두 딸을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곳에서 만나게 해 사실임을 입증해야 한다. 북한이 이를 거부한다면 오씨와 신씨의 가족관계를 무효화해 오씨의 신씨 모녀 구출운동을 봉쇄하기 위한 술수임을 자인하는 것밖엔 안 된다.

어쩌면 오씨가 가족을 버리고 신씨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북한의 주장은 맞는 말일지 모른다. 애당초 오씨가 신씨와 두 딸을 북한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멀쩡한 가족을 파괴하는 북한이 가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