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모럴해저드] 밀항하다 잡힌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 “차에 둔 56억 친구가 훔쳐가”
입력 2012-05-08 23:34
김찬경(사진·구속)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황당한 행보가 연일 화제다.
서울법대 출신 사칭, 신용불량자 신분의 저축은행 대주주, 밀항 시도 등 연일 일반인들의 사고를 뛰어넘는 엽기행각을 벌인 김 회장이 최근에는 56억원의 거액을 친구에게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신불자가 저축은행 대주주로 버젓이 행사한 부분에 있어서 당국의 허술한 심사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8일 충남 아산의 한 모텔에 세워둔 차에서 현금 56억원을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훔친 사람은 50년 지기 친구이자 별장관리인 A씨라는 것이 김 회장 측의 주장이다. 56억원이라는 거액을 A씨와 함께 승합차에 싣고 아산에 내려온 것 자체가 예상을 벗어난 일이어서 김 회장은 또다시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회장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액수를 고려할 때 이 돈이 사실상 김 회장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은 미래저축은행의 영업정지에 앞서 고객 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빼돌리고 밀항 계획 등을 치밀하게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이 붙잡힌 뒤 거액의 도난사실이 새삼 드러난 점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 회장이 은행 부실화 책임을 조금이라도 모면하기 위해 사안을 부풀리거나 조작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도난 당시 김 회장은 “A씨가 이 돈을 갖고 도망가서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돈을 뺏기지 않았으면 은행 퇴출이 안 됐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엿보인다.
한편 김 회장이 저축은행을 경영한 것과 관련,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다. 김 회장은 모 건설회사를 공동 경영하면서 대주주 자격으로 연대보증을 섰다가 2007년 건설사가 파산하면서 164억원의 빚을 졌다. 그는 지난해 3월 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채무불이행자로 은행연합회에 등록됐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이 은행 대주주 행세를 하고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도가 지난해 7월 처음 시행됐고 김 회장은 그 이전에 발생한 채무로 신용불량자가 돼 소급적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통해 저축은행 몸집 불리기를 조장했던 감독당국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뒤늦게 도입된 대주주 적격성 심사 자체도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실시된 첫 심사에서 이번에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모두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