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깊이 있는 행복의 신비
입력 2012-05-08 18:20
우리는 행복을 원한다. 행복을 원치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행복이 의미하는 바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 심층에 들어가 보면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그런 까닭에 행복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다. 행복은 어떤 면에서 느낌이다. 행복한 감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감정이 자주 바뀌는 데 있다. 행복이란 감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작용한다. 때로는 밀물처럼 밀려오다가, 때로는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행복이 무엇이며, 행복이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을 그토록 갈망하고, 그토록 추구하면서도 진정한 행복이 어떻게 임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이 감정에서 오는 것이라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깊은 감정을 느낄 수가 있고, 깊이 있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행복이란 열매이지 씨앗이 아니다. 천국의 식품점에는 열매는 없고 씨앗만 판매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씨앗이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한다. 즉 원인을 제공해야 한다. 행복의 씨앗이 바로 생각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누구나 마음먹는 것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환경을 무시할 수 없지만 환경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 우리의 태도가 행복을 불러 온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각에 있다. 행복을 보는 시각이, 행복한 감각을 자극시켜, 행복하게 만든다.
행복은 추구함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함으로 임하는 것이다. 행복은 작은 데 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잘 가꾸어야 한다. 행복은 남을 배려할 때 임한다. 희생적으로 사랑할 때 임한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때 행복이 임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할 때 임한다. 깊은 행복은 깊은 섬김을 통해 임한다. 특별히 감사할 때 집 떠난 행복의 파랑새가 다시 찾아와 가정에 깃든다.
행복은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의미 있는 일에 몰입할 때 임한다. 자신을 잊어버린 채 주님을 찬양할 때 임한다. 자신을 많이 생각할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잊어버릴 때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을 잊을 정도로 웃을 때,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주어진 일에 빠져들 때, 하나님의 사랑에 몰입할 때 행복이 깃든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행복의 절정은 거룩에 있다. 거룩을 심으라 그리하면 행복을 거두리라. 거룩은 참된 행복을 불러오고, 그 행복을 지켜준다. 죄악의 쾌락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거룩이 영원한 행복을 보장해 준다. 그래서 행복은 신비다.
(LA새생명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