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건강보다 더 큰 약속
입력 2012-05-08 16:09
얘들아, 종우 아빠야. 대구에 사는 중2 종우말이야. 그전엔 섭섭한 일이 있으면 “비뚤어질테다” 그러곤 곧잘 풀던 아이가 며칠 전엔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었는지 ‘쾅’하고 문을 닫고선 제 방에서 울고 있지 않겠니? 슬그머니 들어가 말을 붙였지. “너 많이 속상했나 보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에서도 친구가 하나도 없는데 엄마조차 내 맘 몰라주면 난 어떡하란 말이야”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큰 소리로 엉엉 울지 않겠어? 그러니 아빠 마음은 어땠겠니? 그냥 울고 있는 녀석을 꼭 껴안고 있자니 아픈 마음이 전해지는지 나도 괜스레 눈물이 맺히더라. 문득 종우가 어렸을 적 생각이 나데. 앙증맞은 손 맞잡고 쫄랑쫄랑 유치원 가다 땅강아지도 보고, 또르륵 말아버리는 공벌레도 톡 건드려보고 담벼락 돌 틈에 핀 민들레 홀씨도 불어보고 그랬지.
얼마나 외로운지 안단다
종우가 공부는 잘 하냐고? 그런 민감한 건 묻지마.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희가 잘 알잖아. 공부를 잘해도 성적 걱정, 못해도 또 걱정, 그런 거 아니겠어. 그뿐이야 어디? 부모님들의 성적에 대한 기대는 또 어떡하고? 새로움을 익히는 기쁨보다는 경쟁의 치열함을 배우는 것 같지.
학교에서도 힘들었는데 집에서까지 외톨이가 된다는 건 정말 비참한 기분일 것 같애. 엄마, 아빠가 헤어진 후 각각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자긴 할머니에게 맡겨진 한 중학생을 만난 적이 있어. 버려진 느낌에, 무가치하다는 생각에 몹시 힘들어하는 여학생이었지. 아저씨에게 온 건 자해하다 손목을 다쳐서 상처를 꿰매러 온 거야. 수술 기구를 펴놓고선 그 학생의 아픈 맘이 느껴져 눈물이 앞을 가려 수술을 못하겠는 거야. 둘이서 그냥 울었어.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지, 얼마나 더 외로워야 하는지, 얼마나 더 깨어진 가정을 그리워해야 하는지.
놀기 좋아하고 나서기 좋아하고 몇몇이 모여 신나게 학교 가던 종우가 마음 나눌 친구가 없단 얘기는 뜻밖이었지. 겉으로 어울리는 것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눈다는 건 정말 다른가봐. 외톨이가 된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일이잖아. 종일 아무도 말 안 붙여주고 거기에 놀림까지 더해지면 참기 어렵겠지. 오죽했으면 예수님조차도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고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시고 “나와 함께 한시라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외로움을 토로하셨을까.
실컷 울어, 하지만 포기는 안돼
주위로부터 따돌림 당하시다 결국엔 십자가에까지 내몰리셨지. 예수님의 아픔은 얼마나 크셨을까.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소명에 대해 말해주고픈 거야. 그 분은 고통과 고립과 고독이라는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자신의 소명을 놓치지 않으셨지.
너희라고 왜 그런 부르심이 없을까? 곤경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친구들의 기사를 보곤 가슴이 먹먹하구나. 그 아이들이 겪었을 절망감 혼란 슬픔 무력감 절박감이 어떠했을까? 사방이 막힌 궁지에 몰린 듯하고 해결책은 없어 보이고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빠지면 사리에 맞게 생각하고 대안을 헤아려 보는 힘이 차단된다고 그래.
우울증이라는 긴 수렁을 헤쳐온 아저씨도 끝없는 슬픔과 의혹 속에서 몸부림친 적이 있었지. 그럴때 ‘가지 않은 길’로 알려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하나가 힘이 되어줬어. ‘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나.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래도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수 마일을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수 마일을 더 가야한다.’ 그래서 너희도 하나만 약속해줘. 종우처럼 엉엉 울기는 하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스스로를 해치진 않겠다고.
<대구 동아신경외과 원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