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공원의 두 얼굴

입력 2012-05-08 18:08


영국에 현대적 의미의 첫 도시공원이 만들어진 것은 1890년대다. 런던의 도시화가 심각해지면서 시민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고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도시공원의 콘셉트는 세계 수많은 도시로 확산돼 답답한 도시환경 속에 숨통 역할을 해왔고, 일부에서는 공원이 많아질수록 반사회적 경향과 범죄가 준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그러나 공원에는 전혀 다른 얼굴도 있다. 바로 범죄를 일으키는 장소로 이용돼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는 경우다. 최근 우리도 서울 신촌의 공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일을 봤다. 밤 8시 즈음의 일이었으니 낮 동안 활기로 가득 찼던 공원이 어둠에 묻히면서 한적하고 으슥해졌을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범행 장소가 공원이었을까?

처음부터 범죄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공간은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장소를 이용하고 관리하는 사람에 의해 더욱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지게도 된다. 일반적으로 공원이 망가지는 데는 세 단계 과정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조짐은 쓰레기가 쌓이고, 개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그대로 방치되고, 낙서 벽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조짐이 보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범죄와 무질서를 직감하고 피해가는 일이 벌어진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공원의 주인이 바뀐다. 건전하고 깨끗하게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개를 풀어놓고 방치하는 사람들, 취침을 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공원을 버리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되면 드디어 공원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져 공원 자체가 불안과 공포의 장소로 둔갑한다.

이런 증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 부분에서 공원의 조성보다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모든 장소는 만든 사람의 의도와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잘 유지하는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무리 잘 조성된 공원도 관리와 이용에 실패하면 공포의 장소로 전락한다.

물론 공원 디자인 차원에서 해결점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최근 영국 건축환경협회는 공원 디자인에서 피해야 할 요소를 발표했다. 우선 보행도로 주변을 높은 담장이나 울타리로 감싸지 말 것, 인근 건물에서 공원 관찰이 가능하도록 지나치게 우거지는 식물을 심지 말 것, 공원에 이정표를 잘 세워 위급 시 보행자가 동선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할 것, 밤에도 4m 거리의 시야가 확보될 수 있도록 가로등을 설치하고, 은밀한 공간이 형성되지 않도록 할 것 등이다. 하나같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다.

신촌 바람산 공원이 망가져 범죄의 장소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살인의 현장이 된 장소는 부정적 이미지가 매우 강해져 자칫 버려질 수도 있다. 장소도 사랑을 먹고 자란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이용해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