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거 후폭풍] 그리스 정치적 혼돈… ‘유로존 탈퇴’ 뇌관 건드리나

입력 2012-05-08 19:09


그리스가 정치적 혼돈에 빠졌다. 장기화될 경우 그리스의 유로 곳간이 바닥나면서 첫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이탈국가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유럽을 엄습하고 있다.

‘반(反) 긴축’을 내걸어 6일 총선에서 일약 2당으로 부상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8일 연정구성에 착수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전날 ‘친(親) 긴축’ 정책을 폈던 중도우익 신민당이 연정구성에 실패했다고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그리스 연정 구성, 숫자의 함정에=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38)는 “우리처럼 긴축에 반대하는 좌파와 손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정구성을 위한 매직 넘버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는 공산당이 어느 연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연정 구성 절차는 총선 제1당이 사흘 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면 차례로 제2, 제3당에 권한이 넘어가는 식이다. 모두 실패할 경우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고 이마저 오는 17일까지 안 되면 2차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결국 6월에 총선을 다시 치를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리스 유로 첫 탈퇴국?…8월이 고비=연정 구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유로 탈퇴라는 뇌관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국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17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유권자들은 그 대가로 연금 및 임금 삭감 등의 긴축 프로그램을 추진한 집권연정을 표로 심판했다. 긴축정책의 설계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7일 “재협상은 없다. 우리와 합의한 개혁 프로그램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예정된 390억 달러의 구제금융 분할금을 지원받기 위해 다음달 30일까지 건강보험지급액 감축 등의 초강도 긴축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데드라인을 맞추는 건 현재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으로 미뤄 불가능하다고 WP는 전망했다. 그리스의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서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 경우 국가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쓸 수 있는 유로가 고갈될 경우 유로존 가입 전에 썼던 자국 화폐 드라크마를 찍어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채권국들이 그리스에 약속한 돈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6월 말에서 8월이 사태의 고비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그리스 유로존 탈퇴는 EU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어서 유로존 전체를 혼돈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거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전망도 있다. 이번에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친긴축 정당에 표를 던졌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EU 잔류 및 유로 사용을 선호한다. 다음 선거에선 표심이 좀 더 차분해지면서 사태도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WP는 내다봤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