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체 위기] “내 대신 사인 부탁했을 뿐”… 부정선거 당원 ‘어처구니 없는 해명’
입력 2012-05-08 18:48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당 진상조사위원회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 조사 결과를 뒤집기 위해 ‘그들만의 리그’를 소집했다. 진상조사 보고서를 재검증하겠다며 비당권파를 배제한 채 ‘반쪽 공청회’를 연 것이다.
‘당권파의 대표 얼굴’ 이정희 공동대표는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조사 결과 자체가 부실하다”는 기존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비당권파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발제를 통해 “진상조사위는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중세 마녀사냥, 당과 동지에 대한 무고, 진보당 내부로부터의 몰락, 진보집권의 가능성 소멸”이라고 주장했다. 또 “부정의 오물을 뒤집어쓴 당원들의 고통이 눈에 밟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어 지난 5일 지도부 및 비례대표 경선 후보 총사퇴를 결정한 전국운영위원들도 겨냥했다. 그는 “그들이 직접 전자회의에 참여한 게 맞는지, 처음부터 본인들이 접속해 키보드 두드린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100여명의 당권파 당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힘을 받은 이 공동대표는 “전자회의도 다른 사람이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코드를 알면 대리 참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공동대표가 등장할 때는 방청석 곳곳에서 “힘내세요” “누가 우리를 사기꾼으로 만든 건지 낱낱이 밝혀주십시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이 공동대표는 김선동 의원과 포옹한 뒤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한 김재연 당선자와 나란히 앉았다.
첫 발언에 나선 이인석 충북 충주공동위원장은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열심히 선거관리 업무를 봤다. 관리자 서명 과정에서 한 사람이 투표자에 연이어 서명한 걸 부정이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조그만 실수는 있었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비화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힘내세요”라고 소리쳤다. 이 공동대표도 사회자도 이 당원을 저지하지 않았다.
전남 장흥에서 올라온 당원들은 “농민당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소리가 나자 사회자가 황급히 “오늘은 사진 찍는 자리 아니다.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경기도 오산의 부정선거 의심사례로 지목된 최병성 당원은 “투표 장소에 친구들이 있길래, 내 대신 사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이름이 ‘병성’인데 친구들이 평소에 ‘병신 병신’ 하며 놀린다. 나중에 신문에 난 것을 알고 놀랐는데, 그 친구가 내 사인란에 ‘병신’이라고 적었더라”고 해명했다.
2시간가량 계속된 이날 공청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야말로 동지애(愛)가 흘러 넘쳤다. 진상조사위원이나 비당권파 인사들이 전혀 나오지 않아 논쟁도, 얼굴 붉힘도 없었다. 축제 분위기였지만 당권파 수뇌부는 될 수 있는 한 진지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